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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4 /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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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4 / 울릉도

입력
2003.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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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상처는 깊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는 그렇게 육지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져 가는 듯했다. 주민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수차 말했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중요 수입원 중 하나인 관광객의 감소로 주민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을 정도라는 소문도 들려왔다.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울릉도를 찾았다.그곳에도 여지없이 가을은 찾아왔다. 섬 전체를 휘감은 국화, 그리고 성인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단풍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울릉도는 꽃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주민들의 피땀어린 복구작업으로 도로망과 기반시설도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오전 10시 한겨레호를 타고 강원 묵호항을 출발했다. 망망대해 속에서 시속 70㎞에 가까운 속도로 파도를 가르며 질주한다. 1시간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 돌고래 떼가 무리지어 하늘로 박차 오른다. 배와 경주라도 벌일 태세다. 운이 좋으면 동해바다 전역을 돌고래 떼가 뒤덮는 장면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뤄진 섬 하나가 눈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중세의 고성을 보는 느낌이다. 배가 해안으로 접근하는 장면은 한 편의 드라마다.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섬으로 질주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대로 부딪힐 것 같다. 엄청난 힘을 가진 자석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섬 가까이 오니 그제서야 마을이 하나 둘씩 보이고 선박이 정박할 방파제도 눈에 띈다.

배가 저동항으로 들어간다. 원래는 도동항에 도착해야 하지만 태풍때 방파제 일부가 소실돼 내년 3월 복구될 때까지는 저동항을 이용해야 한다. 포항에서 출발하는 썬플라워호는 정상적으로 도동항에 정박한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어촌 특유의 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한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차를 타고 도동으로 향한다. 울릉도를 찾는 대다수 관광객의 여행이 진행되는 곳이다.

울릉도의 가을은 국화에서 시작해서 단풍으로 마무리한다. 국화를 만끽하기 위해 우선 도동 해안산책로로 향했다. 노란색 털머위가 절벽을 뒤덮었다. 봄나물인 머위와 비슷하지만 뒷면에 털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도로 옆 절벽으로 온통 흰색과 보라색을 띤 해국이 만발하다.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보다 가까이서 울릉도의 가을을 맛보고 싶어 차에서 내렸다. 해안절경 중 가장 장엄한 모습을 연출한다는 사태감에서 투구봉앞까지 3㎞ 가량을 걸었다.

한없이 맑은 가을하늘이 투영된 바다는 몇몇 열대지방의 해안에서나 볼 수 있는 크리스탈 블루색이다. 고개를 들면 절벽위에 층층으로 겹쳐놓은 듯한 해안단애가 웅장한 위용을 드러낸다. 차를 타고 가면 결코 볼 수 없는 해안절경이다.

주민들이 미국의 그랜드캐년과 비교할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다. 태국 최대의 관광지역인 푸켓 인근의 섬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국적인 풍광의 연속이다. 아쉬운 것은 별도로 마련된 산책로가 없다는 것.

섬 주위를 돌았다면 이제는 산위로 올라간다.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984m)의 화산폭발로 형성된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 나리분지에서만 서식하는 울릉국화와 섬백리향도 가을의 전령사다.

울릉도는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 이달 말이나 내달 초면 절정에 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무렵이면 해안선일대를 수놓은 국화는 사라진다. 국화가 지면 단풍이 바통을 이어받아 가을을 연장한다.

국화가 자연이 빚어내는 가을이라면 밤마다 인근 앞바다를 메우는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작품이다.

해질녘이면 출발하는 배의 행렬을 표현한 도동모범(道洞慕帆)과 오징어잡이배가 밤 하늘에 수평선을 따라 늘어선 모습인 저동어화(苧洞漁火)는 울릉팔경 중에서 가장 빼어난 장관을 자아낸다. 오징어를 유인하기 위해 켜는 집어등의 불빛이 워낙 강해, 바다는 불야성을 이룬다.

울릉도의 한 공무원의 말. "인공위성으로 아시아 지역의 사진을 찍으면 낮에는 중국의 만리장성, 밤에는 울릉도의 어화만 보입니다."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화에 대한 주민들이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울릉도의 가을은 이렇게 무르익고 있다.

/울릉도=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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