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악동 로베르토 로드리게즈가 '커피 값도 안 되는' 7,000달러로 비디오용 영화 '엘 마리아치'를 만들어 할리우드를 놀라게 하고 제작비의 300배나 되는 204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이 1992년, 그의 나이 스물 넷일 때였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올해 '엘 마리아치'와 그것의 리메이크작 '데스페라도'(1995)를 잇는 엘 마리아치의 완결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Once Upon A Time In Mexico)가 나왔다.초저예산 영화의 대표작으로 이젠 영화사의 전설이 된 '엘 마리아치'는 재산이라곤 기타 케이스 하나가 전부인 엘 마리아치의 좌충우돌 영웅담을 재기 넘치게 그린 작품.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저예산의 벽을 넘어선 그는 이후 할리우드의 거대자본과 손잡고 '황혼에서 새벽까지', '스파이 키드' 등을 만들어 할리우드의 총아로 컸다.
로드리게즈는 거대 자본뿐 아니라 죠니 뎁, 안토니오 반데라스, 셀마 헤이엑, 윌렘 데포 등의 스타들을 이 작품에 대거 불러 모았고, 여기에 서부영화와 액션, 홍콩 느와르, 블랙 코미디 등 온갖 장르를 칵테일해 화려한 오페라를 방불케 하는 오락물을 완성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 빌려온 제목은 이 영화가 영화사 뿐만 아니라 굴곡진 아메리카 역사의 이면에 대한 은유임을 보여준다.
마약왕 바리요(윌렘 데포)와 그의 하수인인 마르케스 장군이 대통령 암살을 노리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건달기 다분한 CIA 요원 샌즈(죠니 뎁)가 자식과 아내(셀마 헤이엑)를 잃고 홀로 은거하는 전설적 영웅 엘 마리아치(안토니오 반데라스)를 혼란한 '강호'로 다시 불러낸다는 설정은 이 영화가 무정부주의적이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역사관 위에서 마음껏 '역사를 데리고 놀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절대적 선도 악도 없다는 위악적 제스처는 바로 이 영화의 요란한 유머 감각과 연결된다.
아이들의 도시락 가방에 검은 돈을 담고, 의안 속에 주요 정보를 숨기는 건 기본이고, CIA 요원이 가짜 의수를 달고 장애인 행세를 하는 식의 익살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기타 케이스를 스케이트 보드처럼 타거나, 기타 케이스가 알고 보니 화염방사기였다는 등의 넉살은 '엘 마리아치' 이후 계속 변주해 온 서부영화의 코믹한 재해석.
대통령이 머리에 보자기를 쓰고 건달처럼 도망가는데도 스크린에 내내 쾌활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은 영화의 이런 독특한 매력 덕택이다. 정치와 역사를 유쾌한 농담처럼 얘기하는 잡종 활극이다. 24일 개봉. 18세 관람가.
/이종도기자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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