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영화의 흐름 중 하나는 가족 내부에 대한 다소 심각한 고민의 표출인 것 같다. 여기서 굳이 '심각하다'고 표현한 건, 그것이 성적인 부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여주는 방식은 은밀하다. 그것은 장르 법칙 속에 감춰져 감지하기 힘들 때도 있고, '설마 그런 의미일까'하며 반신반의하게도 한다.1980년대 수많은 에로 영화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항상 불륜과 치정 혹은 '유부녀의 욕정' 같은 테마 주위에서 맴돌았다. 아마 그 시기에 가장 급진적으로(?) 가족 내 성 문제를 다룬 영화는 '이브의 건넌방'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고1 수학여행 때 경주 극장에서 몰래 봤던 영화로서(앞줄에 국민윤리, 교련 교사가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처제와 형부의 묘한 관계를 다룬 영화였다.
노출 신이 많진 않았지만 보는 내내 팽팽한 성적 긴장감을 주었으며, 특히 형부와 언니의 성 관계를 엿보는 그녀(나영희)의 모습은 프로이트 이론의 한자락을 그대로 영상화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처제와 형부가 맺어진다는 결말도 꽤 인상적이었고 "언니의 결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라며 절규하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난다.
이 영화의 묘한 변형판이 이재용 감독의 '정사'다. 이 영화에선 언니가 여동생의 남자를 빼앗는다. 하지만 뉘앙스가 바뀌어, 이 영화는 가족 내에서 얽혀버린 성적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한 여자의 성적 자율권에 대한 영화가 되었다. 이후 한국영화가 가족과 성을 다룰 때는 간접화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근친상간의 기억 때문에 성격 장애를 겪는다는 '301·302' 식의 접근법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올해 나온 영화 중에 '장화, 홍련'은 한 편의 호러이기 전에 사춘기 소녀의 불안한 성 심리에 대한 영화다. 그녀는 자아 분열을 겪고, 젊은 새엄마는 아버지를 가운데 놓고 그녀와 성적 경쟁을 벌이는 존재다.
'스캔들'(사진) 또한 마찬가지다. 여기서 이재용 감독은 또 한 번 묘한 뒤틀기를 시도한다. 조씨 부인(이미숙)과 조원(배용준)은 사촌지간. 서로 묘한 연모의 정을 품고 있다. 이러한 근친적 애정은 이 영화를 전개시키는 동력인데, 영화의 외피는 바람둥이 조원의 숙부인(전도연) 정복기이자 궁극적인 순애보다. 그리고 '바람난 가족' 같은 영화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족 내에서 겪는 성적 갈등을 밖에서 해소하는 방식을 택한다.
여기서 지난 주에 개봉한 '아카시아' 같은 호러를 언급하면 조금은 오버일까? 이 영화에서 비극의 시작은 부부의 성적 문제다. 결혼한 지 꽤 됐지만 그들에겐 아이가 없다. 게다가 남편의 직업은 산부인과 전문의. 더욱 곤란한 지경이다. 그들은 입양을 결정하고 한 아이를 데려온다. 마치 이상한 운명에 의해 선택된 듯한 그 아이. 하지만 임신을 포기하고 있던 그녀에게 아이가 생기고, 입양아와 친자 사이의 묘한 대립이 만들어지면서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성적 뉘앙스를 지니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일까? 하지만 '아카시아'의 무의식 저편엔 묘한 성적 암시가 숨어 있는 듯하다.
/김형석·월간 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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