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보면 인간들로부터 학대받던 동물들이 단결해 인간들을 내쫓고 농장을 차지한다. 동물들은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자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조항을 법으로 정한다. 그런데 나중에 많은 동물 중에서 돼지들이 주도하는 독재가 시작되면서 이 조항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단 돼지들은 더욱 평등하다"로 바뀐다.수년 전 미국의 정부관리를 만났는데, 그는 우리나라 통신시장이 개방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통신시장이 개방돼 있지 않아 소비자들이 비싼 값으로 통신 서비스를 구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정부가 몇몇 업자들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소비자들을 희생시키고 있으므로 통신시장 개방은 우리나라를 위해 시급히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물었다. "그렇게 효과가 좋은 통신시장 개방을 미국은 왜 안하고 있지요?" 갑자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는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지만 설득력이 없었다. 돌이켜 보면 쇠고기 분리판매 문제, 쌀 수입 문제, 소주세율 문제 등에서 우리가 주장해온 것이 바로 우리나라 사정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것이고, 외국의 정부나 기구들은 우리 주장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가 통상압력에 대해 "그 말씀은 다 맞지만 특수성이 있으므로 이해해 주십시오"라는 식의 사정만을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은 자국 내의 소수민족을 보호한다며 소위 '소수민족보호정책'을 시행하여 흑인이나 인디언들의 직장·학교 선택, 문화 활동, 거주지역에 대해서도 막대한 지원금을 주거나 쿼터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내에서는 합법적으로 시장에 적극 개입하면서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나 문화가 미국 내 소수민족의 문화보다 못하기 때문인가? 200여년 전에 만들어진 미국 헌법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혁명적인 인권선언이 있었지만 당시 흑인은 사람 대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 조항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미국의 주류사회가 흑인을 사람으로 인정하기까지 걸린 세월만큼 기다리면 우리 문화도 미국 내 소수민족 문화정도의 대우를 미국으로부터 받을 것인지…. 모든 나라의 문화는 평등한데, 미국의 문화는 언제까지나 더욱 평등한 것인지….
김 형 진 국제법률경영대학원대학교 교수·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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