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대 대통령중 상당수가 골프를 즐겼지만 존 F. 케네디 만큼 골프를 잘 치고 몰입했던 대통령도 드물다. 케네디는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대통령답게 우아한 스윙폼으로 동반자들을 매료시키곤 했고 매너 또한 훌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뉴욕 타임스 기자를 지낸 돈 반 나타 주니어라는 작가가 미국의 역대 주요 대통령들의 골프취향을 다룬 '퍼스트 오프 더 티(First off the tee·골프 치는 대통령)'를 보면 케네디의 골프 열정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1961년 2월의 토요일 아침, 케네디는 백악관 입성 후 첫 라운딩에 들떠 있었다. 야속하게도 백악관 일대에 짙은 안개가 끼면서 라운딩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케네디는 그러나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 함께 라운딩을 하려던 친구와 경호원을 대동하고 백악관 앞뜰의 로즈가든으로 나갔다. 그리곤 아이언(비교적 짧은 거리를 보내는 데 사용하는 골프채)을 꺼내 안개 속으로 공을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한참후, 그것도 모자랐는지 케네디와 친구는 우드(먼 거리를 보내는 데 쓰는 채)를 잡고 백악관 집무실의 측면을 향해 샷을 때렸다. 그의 친구가 "백악관 구경 온 관광객들이 볼에 맞으면 어쩌나"라며 걱정했지만 케네디는 개의치않았다. 케네디는 대통령 취임후 바쁜 일정이 계속됐지만 주말은 물론 주중 집무시간에도 은밀하게 외부 골프장으로 나가 골프를 쳤다는 증언도 남아 있다.
이뿐이 아니다. 국내 골프장은 겨울철에도 골퍼들로 붐비지만 미국만 해도 기온이 떨어지면 골프장은 한산해진다. 케네디는 예외였다. 백악관을 채 3년도 지키지 못 했지만 그 기간 동안 눈 쌓인 골프장을 숱하게 드나들 만큼 광적이었다.
골프에 흠뻑 빠져 살았던 케네디였지만 그의 골프열정을 아는 미국사람들은 그 당시에도, 지금도 별로 많지 않다. 국민들에게 골프중독환자로 낙인찍혔던 전임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목도했던 케네디는 대중들이 '골프 치는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네디는 자신의 골프에 관한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쳤고, 언론도 '국익'을 위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감추기 노력에 협조했다.
케네디는 골프 뿐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이중성이 매우 강했다. 때로는 여성문제 등에서 일탈적인 행태를 보이긴 했지만 최소한 자신의 모양새를 대중이 원하는 대통령상에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다. 그 이중성은 결과론적으로 보면 효율적이고 성공적이다. 요즘의 우리 상황에 대입시키면 더욱 그렇다. 물론 골프와는 격이 다르지만, 우리의 대통령은 인사와 정책 특히 입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철학을 숨김없이 고백하곤 했다. 불행하게도 그가 소리높인 것들은 상당 부분 대중의 '코드'와는 달랐고, 일부는 대중이 알고 싶지 않은 내용도 포함됐다. 그의 준비없는 거친 입, 자기사람 챙기기, 미묘한 사안에서의 편들기 성향은 대중이 특히 꺼리는 것들이다. 그 결과 대통령은 곳곳에서 전투를 치러야 했고 그 상흔은 재신임 파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더라도 그와 우리의 앞날이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편들어 주는 이들이 많지도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 시중의 기류와 충돌하는 사안들까지 내놓고 말싸움, 기싸움을 하다가는 경험칙대로 내상만 또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겪은 지금도 미래에 대한 자신이 없다면 케네디의 이중성을 한번쯤 따라해보는 것도 묘안이 될 수 있다.
김 동 영 체육부장dy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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