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은주기자의 컷]참 거시기한 거시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은주기자의 컷]참 거시기한 거시기

입력
2003.10.21 00:00
0 0

"야, 거시기는 뭐하냐" "방에 있어라" "그럼 거시기는?" "학교 갔어라"계백장군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영화 '황산벌'을 본 한 여성 관객은 "참말로 우리 고향선 거시기를 참 거시기하게 쓴다"며 이런 예를 들었다. 세련된 그의 외모와 그의 입에서 오랜만에 쏟아지는 현란한 전라도 사투리는 혼절할 정도로 우스꽝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투리는 조폭이나 촌스러움 같은 것과 어울리는 단어였다. 사투리에 대한 그런 편견을 고쳐야 한다는 건 이제 거의 국민 운동 수준이 됐지만, 그게 운동이 됐다는 건 그만큼 편견의 뿌리가 깊음을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사투리에 대한 편견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투리를 이해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십 수년 전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슬리퍼를 의미하는 경상도 단어는 서울 지역에서는 '자위' 행위의 은어였고, 수업을 빼먹고 도망친다는 의미의 전라도 사투리는 역시 서울서는 섹스의 비속어였다. 때문에 희한한 단어를 아무 뜻 없이 사용하던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의 음흉한 미소에서 뭔가 불길한 기운을 감지해야 했다.

물론 이런 단어는 피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피하려고 해도, 이해하려고 해도 어려운 그 무엇이 있으니, 경상도 사투리의 '언지예'와 전라도의 '거시기'가 그렇다.

"밥 먹었니?" "언지예." "아까 말야?" "아니라카이." 이렇게 대화가 전개되게 마련이다. 여기서 '언지예'는 '언제요?'가 아니라 '아닙니다'의 뜻이다. 경상도의 '언지예'와 맞먹는 난해한 전라도 사투리는 역시 '거시기'다. "거시기는 혔능가"라든가, "맴이 쪼까 거시기하네" 같은 표현은 가히 프랑스 영화를 스페인어 자막과 함께 보는 듯한 혼란을 던진다. 그렇게 혼란스런 이유는 바로 단어가 갖는 명징한 의미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국어 사전은 '거시기'를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 대신으로 쓰는 대명사', '말하는 도중에 갑자기 말이 막힐 때 쓰는 감탄사'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전라도 사투리의 '거시기'는 이런 제한적 분류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사투리를 쓰는 그들 사이에서는 왜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그건 바로 사투리가 이심전심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황산벌' 마지막 부분, 김유신은 계백의 목을 치기 직전 "와 이리 덥노"라고 말하고, 계백은 "무지하니 덥구마잉"으로 응수한다. 전쟁이 미친 짓이라는 것을 목 치는 자나 죽는 자, 이심전심으로 알았던 것이다. 뜻이 통하면 말이 다른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참말로 거시기하게) 컷!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