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유언에 따라 당신의 시신을 화장해서 아버님 곁으로 모셨습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사망 신고서를 작성하고 어머님 명의의 전화를 해지했습니다. 어머님이 세상에 남긴 흔적을 지우다 보니 인생이 참으로 허망하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되는군요.올해 초 갑자기 당신의 건강이 나빠졌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신을 구급차에 태우고 대학병원으로 향하면서 갖가지 상념이 떠올랐습니다. 노인 건강은 정말 믿을게 못되더군요. 84세로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건강한 당신이었습니다. 안경 없이도 책을 읽었고 치아는 곱고 튼튼해 아무 것이나 잘 드셨지요. 눈동자에는 잡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말기암이라며 집으로 돌려보내더군요. 어머님을 집에 모셔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평소의 당신과 차이가 많았습니다. 피부는 주사기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했고 이마에 주름은 왜 그리 깊게 패였던지요. 당신의 오른손 엄지 손톱이 기형인 것도 이 때 처음 알았습니다. 나는 평생 어머님을 모르고 살았던 거지요. 불효자의 불찰입니다. 병원에서 퇴원한지 한 달 만에 당신은 세상을 떠났지요. 병실에서 동갑내기 할머니가 임종을 맞는 것을 보고 당신은 "나도 어서 저 길을 가야 하는데…"라며 혼잣말을 했지요.
당신은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서 성실함 하나로 6남매를 키우셨습니다. 55세에 남편을 여의었지만 슬픔을 추스릴 사이도 없이 논밭에 나가 일했습니다. 불효자를 대학에 보내느라 해가 질 때까지 논과 밭을 매었지요. 완고한 시부모 밑에서 시집살이를 묵묵히 감내했지요.
며칠 전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수첩을 들쳐보니 첫 장에 자식들의 주소, 전화번호를 깨알같이 적어놓고 광속에 있는 콩이며 쑥을 어느 자식에게 얼마만큼 보내야 할지를 기록해놓았더군요. 광 문을 열었더니 콩 자루, 팥 자루가 말끔하게 정리돼 있더군요. 당신의 체취가 느껴졌습니다. 당신은 떠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불필요한 것을 모두 태우고 집안 곳곳을 정리 정돈했습니다. 어머니,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던가요.
이제 깨끗하고 조용한 곳에서 모든 고통을 훌훌 털어내고 편히 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승의 모든 것을 다 잊으시고 영원한 삶을 사십시오. 어머님, 보고 싶습니다.
/김철준·전남 목포시 옥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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