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민주당의 조지프 바이든 의원은 얼마 전 이라크 현지 상황을 조사한 뒤 부시 행정부에 몇 가지 충고를 했다. 그 첫째는 이라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는 것이었다. 심각한 치안 불안과 늘어나는 미군 피해 등 당면한 위험과 막대한 비용 부담을 충분히 알리고 이라크 정책에 대한 국민 동의를 얻어야만, 이라크 개입은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국민의 이해에 바탕한 동의를 얻지 않은 대외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베트남 개입의 교훈을 잊어선 안된다며, '충성스런 야당'의 임무는 자유롭고 충분한 정책 토론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상기시켰다.바이든의 충고는 이라크 경략을 성공적으로 이끌자는 야당 원로의 애국적 충정이라 할 만 하다.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그릇된 전후 정세 예측 등을 비판하지만, 국제 사회가 제국주의 침략이라고 비판한 이라크 점령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는 없다. 그런데도 그의 충고를 글 머리에 소개한 것은 우리 정부가 추가 파병을 결정하기까지 파병의 득실과 위험을 국민에게 정직하게 알리지 않은 점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정부뿐 아니라 여러 정파도 미리 정한 찬반 주장만 되풀이할 뿐 파병의 득실과 위험에 관한 진실된 정보를 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별로 없다. 정부를 견제해야 할 최대 야당은 누구에게 충성하는지 모르나 무조건 파병 찬성이고, 여당 격인 정파는 거꾸로 반대하지만 도움될 정보를 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라의 정체성과 국민의 고귀한 생명이 걸린 국가적 대사를 놓고 고작 이런 정도 논란에 머무는 것은 한심하다.
파병 찬반 논란을 되풀이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누구보다 국민에 대한 책임이 무거운 정부가 파병 논의를 정직하게 이끌지 않고 국민을 오도한 것은 비난받아야 한다. 정부는 처음 추가 파병 얘기를 꺼내면서 북핵 위기해결과 주한미군 철수 등이 걸려 있다며 국민의 불안감부터 유도했다. 미국을 돕지 않으면 미국이 북핵 위기를 고조시키기라도 할 것처럼 겁주다가 위기 해소에 도움될 것이라고 논리를 수정했지만,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추가 파병을 결정한 뒤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대북 유화 발언을 하는 데 그쳤다. 이걸 추가 파병의 대가라고 이르기엔 너무 약소하다.
파병 요구를 거부하면 국가 신용도가 하락할 것이란 주장의 타당성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파병으로 이라크 재건 참여 등 경제적 실익이 클 것이란 주장은 근거가 없다. 미국이 독점한 재건사업 이권을 너그럽게 나눠 줄 것으로 기대하는 우방국은 많지 않다. 국제 사회는 오히려 23일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이라크지원 국제회의에서 재건 비용을 내라는 미국의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국가가 특히 미국의 전쟁에 완강히 반대한 것은 내심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중동 석유 의존도가 높은 유럽과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미국이 이라크 통제권과 이권을 나눠주지 않는한 전후 처리에 선뜻 동참할 리가 없는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처럼 공허한 국익 논란보다 파병에 따르는 위험이나마 제대로 헤아리는 것이다. 이에 관한 정부의 주장은 신뢰성이 없다. 미국이 이라크에 우방을 끌어 들이는 주된 이유는 병력과 비용의 90%, 인명피해의 거의 전부를 부담하면서 치안 확보에 허덕이는 상황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바이든 의원은 최선의 방책은 이라크를 국제 문제화, 병력과 비용 부담을 나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이라크 자체 치안력으로 미군을 대체하는 데는 적어도 5년이 걸린다. 미국은 이 과도기에 미국이 당연히 젊어져야 하는 부담을 우리에게 나누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숨기는 파병 논의는 국민을 속이는 죄악이다.
강 병 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