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정치'에 대해 입을 열었다. 20일 저녁 일시 귀국한 이 전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재신임 정국과 고교 동창인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의 SK비자금 수수의혹 등에 대해 작심을 한 듯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지난해 말 정계은퇴 후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은 물론 정치인들과의 접촉조차 삼가던 그 동안의 행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 전 총재는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투표 제안에 대해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했다"며 "나라가 이렇게 어렵고 혼란스러운데 대통령이 재신임 도박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또 "국민투표는 헌법 위반"이라고 말해 최도술씨 비리의혹 규명을 전제로 국민투표 수용의사를 밝힌 최병렬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와 입장 차이를 보였다. 국민투표에 대한 한나라당의 향후 대응을 놓고 이회창계 인사들과 지도부간 갈등의 빌미가 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이 전총재는 최돈웅 의원과 자신의 연계의혹에 대해서도 "무수한 중상모략을 받았는데 이제 진저리가 난다"며 불쾌한 심경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이 전총재의 이 같은 적극적 언급은 결코 돌발적인 게 아니라는 점에서 심상치 않다. 말 실수를 거의 하지 않고 평소 자로 잰 듯한 언행으로 볼 때 이날 발언이 사전에 준비된 것임을 짐작케 한다. 더욱이 측근들은 귀국 전 "이 전총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것"이라고 이례적으로 예고하기도 했다.
때문에 일각에는 이 전총재가 총체적 정국 혼란의 와중에 정치재개의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성급한 추측마저 나오고 있다. 한 측근은 "이 전총재가 비장한 결심을 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는 물론 최 대표를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의 단합을 강조했고, 다시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그의 언급이 SK 비자금 문제에 대한 '공격적 방어'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이 전 총재가 달라진 것만은 틀림 없다"는 지적이다. 보름 정도로 예상되는 체류기간 중 이 전총재가 어떤 행보를 할 것인지가 그의 속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일차적 잣대가 된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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