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은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 문제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지역으로 평가된다. 11일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도 호남(65.5%)보다는 낮고, 영남(50.3%)보다는 높은 59.4%의 재신임 응답이 나왔다. 과연 충청인의 생각은 무엇인지 현지 르포로 알아봤다."대통령이 재신임을 받지 못하면 신행정수도 건설은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요?" 대전의 신도심인 서구 둔산동 식당에서 만난 김성제(41·사업)씨는 "잘잘못이야 따져야겠지만 그래도 대통령을 밀어줘야 국가적 혼란을 피하고, 충청도 발전도 가져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처럼 대부분 충청인은 혼란스런 정치상황과 어려운 지역경제 현실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행정수도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노 대통령의 재신임을 불가피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공약실천 의지를 재확인하고,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재신임 지지세는 더욱 늘어나는 흐름이다. 그만큼 충청지역에서는 대통령의 갑작스런 재신임 제안이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 이행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천안에서 자영업을 하다 그만두고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이재철(42·천안시 쌍룡동)씨는 "노 대통령의 당선 이후 충청도의 발전을 기대해 재창업을 준비중인데 갑작스레 재신임 제안이 나와 사실 불안하다"며 "국민투표를 한다면 노 대통령이 중도하차하는 일이 없도록 앞장서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신행정수도 건설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민 이성호(61·금산군 남일면)씨도 "노 대통령의 집권 이후 좀 어설픈 국정운영에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지할 것"이라며 "행정수도 이전으로 역대 정권의 '충청도 무대접'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청주 경실련 이두영(38) 사무처장은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은 충청인의 염원이자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사업으로,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재신임 여부와 관계없이 초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에서 21세기 대안정책포럼을 이끌고 있는 김광식(47)씨는 " 충청권에서 재신임 여론이 높은 것은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재신임 정국을 계기로 정치가 한단계 발전하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대감이 재신임 문제에서 노 대통령에게 매우 유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건설업을 하는 홍익표(46·청주시 우암동)씨는 "대통령이 일관성 없는 말로 혼란을 야기한 면이 없지 않지만,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기득권층의 딴죽걸기도 국정혼란에 한몫 한 게 사실 아니냐"며 "불안과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남대 총장비서실장 강전의(45)씨는 "국정운영으로 평가 받으려 하지 않고 재신임을 추진하는 것은 정국혼란을 부채질하는, 무책임하고 신중치 못한 처사"라며 "그러나 노 대통령만한 정치개혁의 적임자가 없기 때문에 믿음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배재대 학생 윤혜림(21·여·관광경영학부 3년)씨는 "재신임 국민투표는 위헌 등 또다른 정쟁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대통령이 국민에게 신임을 묻기로 결단을 내린 것을 환영한다"며 '깨끗한 리더십'을 촉구했다.
물론 재신임 정국 자체를 못마땅해 하는 반응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재신임 정국이 어떻게 발전해 가느냐에 따라 밑바닥 기류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청주시내 육거리시장에서 만난 노점상 정성숙(49·여)씨는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재신임이고 탄핵이냐"며 "정치하는 분들은 쓸데없는 짓 그만두고 어려운 경제를 살리는데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재신임 투표로 큰 혼란이 오면 우리 같은 사람은 더욱 살기가 어려워질 것 아니냐"며 국민투표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화를 냈다. 주부 이현자(36·대전 중구 태평동)씨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 때문에 집값만 천정부지로 치솟아 없는 사람은 요즘 죽을 맛"이라며 "정치는 잘 모르지만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인 만큼 국민투표 같은 논란은 그만하고 서민이 희망을 갖도록 하는 정책이나 펴달라"고 주문했다.
/대전=최정복기자 cjb@hk.co.kr 청주=한덕동기자 dd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