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리자 네오가 잠에서 깬다. 모든 것은 꿈이었다' '네오는 매트릭스가 만들어낸 결함 퇴치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네오는 아키텍트와 대결을 벌어 프로그램을 새롭게 부팅한다' '예고편에서 보여주었듯 네오가 스미스와 대결을 벌여 매트릭스 세상을 끝내 버린다' '2편에서 암시했듯 기계 없는 인간 세상은 존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계와 인간이 공존을 모색할 것이다'.5월 '매트릭스―리로디드'가 '결론은 다음편에…'(To Be Concluded)라는 허를 찌르는 장면으로 끝나자 매트릭스 마니아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결론을 유추하며 3편을 기다려 왔다.
18일 오후 7시30분(현지시각) 미 버뱅크 워너스튜디오에 위치한 스티븐 J. 로스 스튜디오에서 공개된 '매트릭스―레볼루션'의 결말은 승리와 패배, 선과 악 등 이원론적 세계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힌트 '원수를 사랑하라')을 갖고 있다. 네오와 트리니티의 관계, 네오의 육체에 엄청난 변화가 몰려오는 것도 완결편에서나 맛볼 수 있는 충격이다.
3편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2편에서 요원 스미스와 대결을 벌이다가 혼수 상태에 빠진 네오는 트리니티의 사랑의 힘으로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오지만, 기계세계의 침략으로 현실 세계가 위기에 처하자 이번에는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기계 세계로 돌진해 엄청난 대결을 벌인다는 얘기다. "스미스는 너의 부정적 측면이자 너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오라클이 네오에게 말해 주듯, 3편의 핵심은 악마적 스미스와의 대결과 그를 물리치는 해법에 있다.
감독 워쇼스키 형제는 '물량'으로 많은 질문에 답하려고 한 것 같다. '매트릭스'의 매력 중의 하나인 시각적 충격은 이번에도 계속된다. 180대의 카메라를 360도로 배치하고 어느 각도에서나 배우의 동작 하나를 놓치지 않는 촬영 기법인 이른바 버추얼 시네마토그래피는 영화 매트릭스를 다른 시리즈와 비교하는 중요한 기술적 성과이다. '매트릭스―리로디드'에서 1,300건에 이르렀던 컴퓨터 그래픽 장면이 이번에는 800건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블레이드 러너' '에일리언' 등 기계와의 대결이 암울하게 그려진 SF 영화를 방불케 하는 화면을 구사했다. 시시각각 현실세계를 위협하던 기계세계의 전투병 센티넬이 드디어 공격을 개시하고 인간세계의 대형 병기가 이에 맞서 싸우는 장면, 네오와 요원 스미스의 빗속 대결은 이 시리즈가 보여준 대결 장면 가운데 물량면으로는 압도적 우위를 자랑한다. '트위스트 벨트'라는 새로운 액션 기법을 동원, 새로운 몸 동작을 보여준 것도 이채롭다.
매트릭스의 또 다른 매력인 장난기어린 '뒤통수치기'는 이번에도 여전하다. 구원자의 출현을 예언한 오라클이 빵 굽는 시골 아낙네 같은 모습일 줄은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비밀스러운 존재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이어서 웃음이 나는 존재가 이번에도 나온다. 바로 '트레인맨'. 기계세계와 인간세계를 연결하는 열차를 운행하는 트레인맨은 지하철 부랑자의 모습이다.
2편 촬영 후 오라클 역의 글로리아 포스터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매리 앨리스로 오라클의 모습이 바뀌었다(영화에서는 네오를 돕다가 새롭게 프로그래밍된 것으로 설정됐다). 3편에서 유색 인종이 더 많아진 것도 '매트릭스'가 사랑스러운 이유의 하나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불과하지만 사랑을 느끼는 사티 가족(의식불명에 빠진 네오를 돕는다)으로 인도인이 나오는 등 동양인과 흑인 등 유색 인종의 비중이 더 커졌다. 물론 영화의 주제는 사랑과 공존이다.
매트릭스 시리즈가 단순한 액션 명작 이상의 평가를 받는 것은 철학과 액션이 이상적으로 결합했기 때문이다. 동양적 액션을 현란한 테크닉으로 형상화하는 한편, '나는 존재하는가'라는 인식론적 물음과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모티프, 기독교의 구원사상을 결합해 '머리와 근육'이 공존하는 블록버스터로 만들었다. 또 매트릭스와 현실세계의 공존처럼 액션과 철학이라는 두 개의 이질적 가치를 공존시켰다. 영화의 형식과 내용이 서로 조응하는 매력으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음으로써 '매트릭스'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영화로 남았다.
/버뱅크(미 캘리포니아)=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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