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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26> 유기농의 험난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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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26> 유기농의 험난한 길

입력
2003.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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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이 정착해가던 시기에 풀무원식품에서 농장의 생산물을 수거해감으로써 공동체생활에 큰 도움을 주긴 했지만 유기농을 고집하던 정농회 회원들은 당시에도 어려웠다. 유기농법의 성공을 알리는 언론보도에도 불구하고 판로는 급격히 늘어나지 않고 도리어 유기농에 대한 도전만 거세졌기 때문이다.정농회의 유기농은 정부와 농촌현장 양쪽에서 외면당했다. 한번은 경기도의 한 군수가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 뒤에는 빨갱이가 있다"는 말을 해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식량증산을 지상최대의 목표로 삼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라 증산과 거꾸로 가는 유기농은 당국입장에서 눈엣가시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행히 파문은 거기서 그치고 더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다.

또 한번은 유기농이 인근 논밭에 벌레와 해충을 퍼뜨리는 주범이라는 신문기사로 발칵 뒤집어졌다. 경기도 여주 인근에서 유기농을 하는 논밭의 벌레와 해충이 일반 농가로 번져가고 있다는 보도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피해를 입은 농민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기농에 삐딱한 생각을 갖고 있던 농민들 이야기가 번지면서 언론에 추측성 보도가 나왔던 것이다. 정농회 회원들이 신문사를 찾아가 격렬히 항의하는 등 나름대로 공식대응도 했지만 회원들 가슴에는 오랫동안 상처로 남았다.

이렇게 안팎으로 고난을 당하면서 유기농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1992년 리우환경 회담에 우리나라 NGO대표로 참석하면서 유기농의 실태를 전반적으로 파악한 적이 있는데 실제 유기농을 실천하는 농가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유기농 단체는 4∼5개로 늘어났는데 그 가운데 카톨릭농민회나 농업기술자협회의 유기농업협회 등이 제법 큰 규모였다. 그러나 회원이 2,000명을 넘는 농업기술자협회의 경우 유기농을 고집하는 농민은 20여명에 불과했다. 결국은 150여 회원의 정농회에서 70여명이 유기농의 명맥을 유지해 가는 정도였다.

사정이 이런 지경에 이르자 일반농산물이 유기농산물로 둔갑하는 안타까운 일도 종종 생겨났다. 모 유기농 단체가 강남의 백화점에서 개최한 유기농산물 전시회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대부분 농산물이 농약을 친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단체의 책임자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이런 전시회 같은 행사를 모두 농약회사들이 후원하는 마당에 어쩔 도리가 있습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농약을 친 농산물들이 농약회사의 입김 때문에 유기농산물로 둔갑한 것이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유기농이 닥친 고난을 타개할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나는 유기농산물의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가격이 낮아지면 소비자가 선택할 것이고 저절로 다른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정농회를 비롯해 단체강연이 있을 때마다 과학적인 유기농법으로 생산단가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농법 중에서도 유기질비료의 효과적인 사용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나의 경험에서도 감자를 키울 때 질소보다는 인산과 칼륨성분이 많이 든 유기질비료를 이용해서 4배나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정도만 되면 사실상 가격경쟁력은 충분하고 판로나 소비도 아무 문제될 게 없었다. 세계적으로도 유기농산물은 일반농산물에 비해 30∼40%정도만 비싸면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것으로 돼 있다.

또 교회나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강연에서는 유기농산물의 장점에 대해 강조했다. 실제 화학비료에는 7가지의 성분밖에 없지만 유기질비료에는 18가지 성분이 들어있어 유기질비료를 먹고 자란 농작물은 인체에도 그만큼 좋은 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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