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권영세(權寧世) 의원은 19일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12일 '이라크 파병 문제는 한미동맹을 고려하되 6자회담과 연계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노무현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미국을 방문했다"고 주장했다.권 의원은 이날 미리 배포한 국회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질문 원고에서 "윤영관 외교장관이 유엔총회 기간중인 지난달 25일 파월 미 국무장관에게 파병과 북핵 문제의 연계 방침을 밝혔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면서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는 이에 대해 윤 장관에게 '그런 식으로 하려면 파병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고 미국의 압력설을 제기했다. 권 의원은 또 "정부가 미국에 현실성 없는 안을 제시했다가 오히려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야하는 상황을 초래했다"면서 "외교 안보팀의 협상력도 엉망"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의 태국 방문을 수행중인 반기문(潘基文) 청와대 외교보좌관은 "국가간 외교적 조치와 관련해 공식 발표되지 않은 사항은 말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면서도 "라 보좌관이 20일 브리핑 때 답변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친서가 전달됐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 어떻게 결정됐나
정부가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을 내린 시점과 배경을 놓고 뒷말이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기에 앞서 결정을 내린 뒤 발표시점을 저울질했고, 그 이전에 미국의 압력이 집중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다.
정부는 "파병 발표는 시간표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된 독자적 결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17일 종교·시민단체 대표를 면담한 자리에서 "18일 NSC에서 처음 본격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발표 하루 전인 17일 정치권에 파병 결정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0일을 전후해서는 미국의 압박이 노골화했고, 한미간 논의가 급물살을 탄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8일 뚜렷한 이유없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우리측에서는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과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12일 급거 미국을 찾는 등 한동안 잠잠하던 파병 논의가 돌연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이 됐다. 실제로 콘돌리사 라이스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14일 라 보좌관과의 면담 이후 바로 "한국이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지지하고 파병에 관심이 있다"며 모종의 타협이 이뤄졌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정부의 핵심당국자는 19일 "17일 유엔의 이라크 결의안은 파병발표의 직접적 계기가 아니다"며 "라 보좌관의 방미 이후를 결정적 시점으로 보면 된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2억달러로 확정된 이라크 재건 추가 지원금 규모에 대해서도 덤을 얹은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당초 정부 안팎에는 한국의 경제규모가 일본(15억달러 지원 확정)의 10% 정도이고,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며 대규모 파병을 한다는 점에서 1억5,000만달러 지원규모가 굳어져 가는 분위기였었다.
먼저 파병원칙을 천명하고, 구체적인 파병 형태와 규모 시기를 추후협상으로 미룬다는 2단계 방안도 고민 끝에 마련된 고육책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전투병 파병 결정을 뒤로 미룬다는 방안은 노 대통령이 발리 방문(6∼9일) 중 참모의 건의를 받고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파병 규모와 형태 등도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는 설명과는 달리 상당부분 한미간에 논의가 진전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일고 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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