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Matrix)는 숫자나 문자를 가로 세로로 배열한 수학의 행렬(Matrix)에서 제목을 따 왔다. 사이버 공간의 가상현실을 구성하는 디지털 코드를 나열해도 비슷한 모양이란 점에서 가상현실의 세계로 의미를 확장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런 개념을 영화에 쓴 것은 '매트릭스' 시리즈가 처음은 아니다."매트릭스를 36―B―37'에 맞추세요. 닥터 럴." 영화 '토탈 리콜'에서 가상현실 여행사를 찾아간 더글러스 퀘이드(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이런 말을 듣게 된다. 가상현실 여행을 준비하기 위한 조건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대사다. '토탈 리콜'은 적어도 '매트릭스'라는 개념을 영화에 끌어온 것만으로도 영화 '매트릭스'의 형님 격이었으나, 슈워제네거의 자아 찾기 과정을 기억과 액션의 고리로 풀어가는 바람에 철학적 깊이에서 '매트릭스'에 한 수 밀렸다.
영화 '매트릭스'의 독특한 촬영 기법은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쳤고 '슈렉'과 '무서운 영화' 등이 대표적이다. 산적을 만난 피오나 공주가 갑자기 괴력을 발휘할 때 보여주는 모습은 '매트릭스' 속 트리니티의 쿵후와 공중부양 장면 그대로다. '무서운 영화' 역시 같은 장면을 패러디해 관객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최근 개봉한 '이퀼리브리엄'은 아예 '매트릭스는 잊어라'는 노골적인 카피를 통해 매트릭스의 '아류'임을 자백한 바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빗속에서 벌어지는 수백명의 스미스 요원과 네오의 결투 장면이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영향을 받았느냐 여부이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펼쳐지는 결투 장면에서 주먹이 오가는 장면을 슬로 비디오로 잡은 장면은 매우 비슷한 게 사실이다. '인정사정…'은 미국에서 'No Where To Hide'란 제목으로 개봉돼 아시아 영화 팬인 워쇼스키 형제가 이 영화를 보았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19일(현지시간)로 예정된 인터뷰에도 나타나지 않을 예정이어서 우중 결투 장면과 '인정사정…'의 연관성은 영원히 숙제로 남게 됐다.
/버뱅크=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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