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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

입력
2003.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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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리 켈리 지음·강현석 옮김 이소출판사 발행·1만5,000원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 경제 분야는 특히 더하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세계 100대 경제군 가운데 51개가 기업일 정도로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 이 책이다. 잠시 생각해 보자. 주주가 어느 누구보다 중요하다는 주주 제일주의, 부의 권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법적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재산권, 정부는 경제에 대한 그 어떤 지배력도 가지지 말아야 하며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경제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자유시장 원칙 등이 자본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인가.

저자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경제학의 핵심적 편견이라는 것이다. 범위를 좁혀보자. 주주들이 기업에 자금을 댄다는 말은 사실인가. 저자는 대부분의 경우 엄청난 거짓이라고 단정한다. 주식시장은 중고차 시장과 같아 중고차를 구입하면 그 돈은 자동차 회사가 아닌 전 주인에게 돌아간다. 회사가 돈을 갖는 것은 신차를 팔 때뿐이다. 또 주주는 곧 기업이라는 일반적인 생각도 마찬가지로 거짓이다.

이 책은 주주 이익 극대화가 기업의 목표라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9·11 테러에 비견되는 엔론, 월드컴 사태는 몇몇 경영자들의 잘못된 행동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가 상승을 기업 성공의 척도로 찬미하는 시스템이 낳은 결과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그런데도 주주 이익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자본의 권리는 신이 내린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진다. 부의 특권에 대한 암묵적 인정인데,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여기서 이 책은 출발한다.

왕권 신수설을 바탕으로 한 군주제는 오랜 세월 존속했지만 결국 무너졌다. 그렇다면 자본도 예외일 수는 없다.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지낸 자본주의는 귀족제 형태의 자본주의라고 규정짓는다. 주주 수익 극대화라는 개념은 자유 경쟁시장에서 한 집단의 이익이 체계적으로 다른 집단의 이익보다 우선한다는 것으로 이는 시장경제와 어울리지 않는 특권이다. 이 같은 재산 소유에 따른 특권은 지나간 귀족제의 잔재라는 것이다.

대안은 경제 민주주의다. 이는 경제적 주권이 재산 소유권에 달려 있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자본을 위한 체제가 아닌 자본의 체제를 말한다. 즉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생산성에 따라 자본을 축적할 수 있고 환경과 지역사회의 천연 자본이 보존되는 체제로, 지속 불가능한 소수의 부가 아닌 지속 가능한 다수의 번영을 의미한다. 이해 관계자 자본주의의 개념과 비슷하다. 단순하게 말해 경제 구조를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민주주의의 근본 이념에 좀더 부합하도록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경제적 민주제의 여섯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논의는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때문에 필요한 것은 (r)evolution, 즉 혁명적 진화/진화적 혁명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지속적 화두인 기업 구조조정에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중소기업 경영자인 저자는 진보적인 경영인들의 자발적 변화가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으로 1987년 '기업 윤리'를 창간해 발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렇게 믿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경제적 민주주의 없이 진정한 정치적 민주주의는 달성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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