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서영 옮김 명상 발행·8,500원
무라카미 하루키(54)라는 이름은 그의 글의 세련되면서도 매우 나른한 분위기와 동의어가 됐다. 음악을 듣고, 요리를 하고, 책장을 넘기는 평범한 행위가 특별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의 글이 이번에는 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는 곳으로 옮겨졌다. '우천염천(雨天炎天)'은 하루키의 그리스·터키 여행기다.
그는 1988년 9월 우라노폴리스에서 배를 타고 아토스로 떠났다. 20개의 수도원이 있고 2,000여 명의 수도승이 수행하는 곳. 그리스정교가 세계의 중심이고 존재의 중심이며 사고의 중심인 곳.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진다. 배가 오지 않아 섬에 갇혀 있어야 하는 날도 있다. 타박타박 걸으면서 몸과 마음이 겪는 감정의 무늬를 경쾌하게 적어나가다가 하루키는 문득 '왜 여행을 하는가'를 묻는다.
"우리는 고향을 떠나 타향에 있다.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장소―그것이 바로 타향이다. 그러기에 모든 일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자면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제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 이상한 것, 기막힌 것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터키로 간다. 이제 막 만난 관광객의 라디오와 카메라를 신기한 듯 만져보고 수군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 하루키는 터키에서 보다 깊이 사람을 탐하기 시작한다. "나를 끌어당긴 것은 그곳 공기의 질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피부에 와닿는 감촉도 냄새도 색깔도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이제까지 맡아왔던 그 어떤 공기와도 달랐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엽서는 색이 바랠 것이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하루키는 여행의 본질은 이 공기를 마시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