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노의 저주는 계속된다. (The curse is still alive)'17일(한국시각) 미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아메리칸리그(AL) 챔피언십시리즈 최종 7차전이 열린 양키스타디움. 2―5로 끌려가 패색이 짙던 뉴욕 양키스가 8회말 1사2루에서 버니 윌리엄스의 적시타로 1점을 따라붙었다.
다음타석에 들어선 일본 프로야구 간판타자출신인 마쓰이 히데키의 2루타로 주자는 1사 2,3루의 동점상황. 순간 이 경기를 미국전역에 생중계하던 ESPN의 카메라가 외야석의 한 관중을 클로즈업했다. 양키스의 모자를 눌러쓴 채 '밤비노의 저주는 계속된다'는 플래카드를 든 한 팬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면서 카메라앵글이 이번에는 마운드로 맞춰졌다. 그래디 리틀 보스턴감독이 선발 페드로 마르티네스에게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저주의 기운이 양키스타디움에 감지될 즈음 리틀 감독은 마르티네스와 몇마디를 나누고 덕아웃으로 내려갔다. 마르티네스를 강판시킬 것처럼 보였던 리틀감독은 마법에 홀린 듯 그를 계속 마운드에 남겨뒀던 것이다.
다음 타자는 호르헤 포사다. 포사다가 힘빠진 마르티네스를 공략, 2타점 동점 2루타를 터뜨리자 5만6,000여명의 관중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파크에 2003 월드시리즈 로고를 새기던 구단직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월드시리즈 티켓을 사기위해 장사진을 이룬 보스턴 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5―5동점을 만든 채 8회말 양키스 공격이 끝나자 ESPN은 '가을의 전설은 여기 양키스타디움에서 막을 내린다(Fall classic end here, yankee stadium)'는 플래카드를 부각시켰다.
보스턴에 밤비노 저주가 계속 될 것이라는 예고였던 것이었을까. 9회부터 소방수 마리아노 리베라를 등판시켜 5―5의 팽팽한 균형을 이룬 연장 11회말 양키스의 공격. 올해 7월 신시내티 레즈에서 이적한 애런 분이 8회말 루벤 시에라 대신 대주자로 나섰다가 첫타석에 들어섰다.
상대투수 팀 웨이크필드는 올 AL챔피언십시리즈에서 양키스에 2패를 안긴 '너클볼의 마술사'. 웨이크필드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너클볼을 초구부터 던졌다. 하지만 분은 변화없이 밋밋하게 들어온 공을 놓치지 않았다.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백구는 좌측펜스를 넘어가버렸다.
분의 끝내기 홈런을 앞세운 양키스가 6―5로 역전승, 시리즈전적 4승3패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반면 보스턴은 '밤비노의 저주'에 다시 한번 몸서리 쳤다. 39번째 AL챔피언에 오른 양키스는 19일부터 내셔널리그 챔피언 플로리다와 7전4선승제의 월드시리즈에서 격돌, 통산 27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게 됐다.
한편 3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투수가 된 리베라는 리그 챔피언십 MVP로 선정됐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 밤비노의 저주란
'밤비노의 저주'는 베이브 루스를 앞세워 1916, 1918년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보스턴 레드삭스가 1919년 12월26일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팔아 넘긴데서 비롯됐다.
당시 구단주이던 해리 프레이지는 브로드웨이에 올릴 한 뮤지컬의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루스를 현금 12만5,000달러를 받고 라이벌 양키스에 트레이드했다.
이후 보스턴은 지금까지 단한번도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루스의 망령 때문에 보스턴이 월드시리즈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시자 미국야구팬은 루스의 애칭 '밤비노'(이탈리아어로 '아기'라는 뜻)를 본따 '밤비노의 저주'라는 이름으로 보스턴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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