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0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라크에 추가로 국군을 파병한다는 방침을 대내외에 천명키로 했다. 노 대통령이 그 동안 '시간을 두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온 점에 비추어 보면 이는 '돌출적인 상황진전'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20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전방위적 압박을 가해온 결과가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17일 문화일보가 "한미 정상회담 전에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것"이라고 보도한 데 대해 청와대가 부인도 시인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만 노 대통령은 파병부대의 주둔 목적을 '이라크 평화'로 못박을 계획이다. 이는 전투병력 파견을 가급적 최소화하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줄다리기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대표적인 파병 찬성론자인 재향군인회 임원과, 반대론자인 시민단체 및 종교계 인사를 잇따라 만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쳤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종 결심을 밝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파병을 단행하는 쪽으로 앞당겨 결론을 내릴 조짐을 보이는 이유는 우선은 유엔의 이라크 결의안 때문이다. 그 동안의 국내 여론 추이를 볼 때도 유엔 결의는 노 대통령의 운신 폭을 넓혀줬다. 유엔 결의 이후에도 결정을 마냥 늦출 경우 미국으로부터 '국내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이날 재향군인회 임원들에게 "주변 정치적 상황들, 이걸 내놓고 미국과 흥정하자는 뜻이 아니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반대론자들인 시민단체 인사들을 만나서는 "파병에 따른 경제적 이익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파병을 안했을 경우에 대한 시장의 막연한 공포가 있는 것 같다"면서도 "내가 실제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우리가 테러의 표적이 되는 것"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이와 함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재신임과 이라크 파병 문제는 별개'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의식, 이라크 파병 결정을 재신임 이후로 넘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청와대측은 한미 정상회담 전에 파병 결정이 발표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 않으면서도 미국에 큰 방향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도 적절한 외교적 카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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