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글 윤열수·이호백 재미마주 발행·4세 이상·8,500원
100년전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어떤 그림을 보면서 자랐을까. 가장 흔한 건 민화였을 것이다. 잘 훈련된 대가들 작품의 세련미에는 못 미치지만, 민화에는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이 솔직하게 배어있어 정감이 넘친다. 언제 보아도 매력적이다.
'토끼의 소원'은 14점의 민화로 엮은 그림책이다. 줄거리는 따뜻한 봄날, 즐겁게 산길을 가다 호랑이와 맞닥뜨린 토끼가 여러 동물들의 소원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준 덕에 살아나는 이야기다.
영리한 토끼, 좀 바보 같은 호랑이의 표정이 익살맞다. 닭과 거북이, 학, 사슴, 원앙, 잉어, 원숭이, 개 등 민화에 자주 보이는 다른 동물들도 차례로 등장해 각각 건강, 장수, 평화, 부부 간의 사랑, 자손 번창 등 우리 조상들이 바라던 소원을 전한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책 읽는 즐거움이 그만이다.
어린이책, 특히 그림책은 최근 몇 년 사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외국의 좋은 그림책 중 어지간한 건 다 소개되어 더 가져올 게 별로 없다고 할 만큼 많이 나왔다. 그럴수록 더 아쉬운 것이 우리네 전통과 정서에서 길어올린,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그림책이다.
영아들에게 책을 보급하는 영국 북스타트 운동의 창시자 웬디 쿨링은 최근 방한하여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 "아기들의 첫 책은 자국 전통과 문화에 뿌리를 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소젖보다 엄마젖이 아기에게 더 좋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점에서 우리 민화로 엮은 이 책은 더욱 소중하다. 굳이 애국심에 기댈 것 없이 예술적 가치만 놓고 봐도 우리 민화의 빼어남은 세계에 자랑할 만 하다. 민화그림책 시리즈 제 1권이다. 후속편이 기대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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