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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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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입력
2003.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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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지음 한길사 발행·1만7,000원

'갈밭마을 젊은 아낙 울음소리 길기도 해/ 군청 문을 향해 울다 하늘에다 부르짖네/ 수자리 살러 간 지아비 못 돌아온 일은 있으나/ 옛날 이래 사내가 남근을 자른다는 건 못 들었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유배지인 전남 강진에서 지은 한시 '애절양(哀絶陽)'의 일부이다. 한 남자가 군역(軍役)의 폐해에 저항하며 자신의 남근을 자른 것을 슬퍼한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에 대해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 백성이 아이를 낳고 군포를 못내 소를 빼앗겼다. 그 백성이 억울함을 참다 못해 양경을 붙잡고 '내가 이 물건 때문에 곤욕을 당한다'며 칼로 베었다. 아내가 울부짖으며 피가 흐르는 양경을 들고 군청으로 나아가 군포를 감해달라고 호소했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시를 지었다."

다산이 최고의 학자이며 사상가로 꼽히는 이유는 학문세계가 '해파만리(海波萬里·파도가 1만리에 이름)'로 비유될 만큼 넓고 깊기도 했지만, 백성들의 처지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개혁을 외쳤던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산의 사상과 학문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간적 풍모와 일상의 삶도 알아야 한다.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는 정조의 총애를 받는 유망한 학자에서 서학(천주교)을 접한 죄로 18년간 유배자로 전락했으나 불굴의 의지로 학문적 업적을 쌓은 다산의 일대기를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박석무(61) 전남대 석좌교수. 그 동안 '다산 기행'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 산문선' 등 10여권의 다산 관련 저작과 논문을 펴낸 그는 "다산의 험난한 인생 역정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본주의와 개혁사상의 뿌리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광주의 선비 집안에서 태어난 다산은 22세에 진사과에 합격하고 6년 뒤 문과에 급제한 후 문신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다섯 차례나 수석을 차지, 당대 최고의 학자라는 찬사를 듣는다. 하지만 임금의 신임이 깊어가고 관직이 높아질수록 시기하는 사람도 느는 법. 마침내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순조가 들어선 신유년(1801년) 천주교 박해 때 그의 집안은 서학을 접했다는 이유로 풍비박산이 난다. 셋째형 약종과 외사촌 이승훈이 이때 순교하고, 둘째형인 약전과 다산도 유배길에 오른다.

다산은 고단한 귀양살이에도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학문에 몰두하면서도 관에 시달리고 굶어 죽어가는 참담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애썼다. 지방 수령들의 횡포를 시로 남기고, 의서를 공부해 백성들의 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그는 또 자식들에게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독서를 권유하고 올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쳤다. 막내 아들이 병으로 죽었을 때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고, 딸이 시집갈 때는 매조도를 그려 선물로 보냈다.

이 책의 매력은 다산의 삶과 사상을 풍부한 시문과 예화로 맛본다는 데 있다. "1년 반 동안 집중적으로 매달려 썼다"는 저자는 "다산이 남긴 저서가 500여 권에다, 시도 2,500여 수에 이르러 인용문을 취사선택하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저자는 그러면서도 "일대기를 정리하면서 위당 정인보나 김남주 시인이 왜 다산을 민족의 스승이자 자랑으로까지 추켜세웠는지를 다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다산의 둘째형 약전이 다산에게 보낸 친필 편지를 처음으로 발견, 공개하기도 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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