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술꾼들의 사랑을 받던 '해장국 동네' 서울 종로구 청진동이 거센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해장국집은 물론 매운 낙지와 걸쭉한 순대국, 고소한 생선구이집 등이 가득 찼던 청진동에 대형 주상복합건물 건립이 추진되는 등 재개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는 것. 서울시도 청계천복원에 맞춰 이 일대를 주거와 문화가 갖춰진 공간으로 변신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피맛길 등 역사·문화적인 특성을 살리자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30여년간 논의만 있던 재개발
낡은 건물과 좁은 골목길로 '도심속 섬'처럼 남아 있던 이곳의 재개발은 1977년 6월 청진동 일부를 포함한 종로1가동, 공평동 등 5만7,124㎡가 도심재개발지구로 지정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재개발은 부침을 거듭했다. 청진동 일대를 9개 지구로 나눠 개발하려는 첫 개발계획의 사업계획 수립이 지연되면서 79년10월 재개발지역 지정이 취소됐다.
83년 청진동 일대 7만7,000여㎡가 도심재개발지역으로 재지정된 뒤 97년 19개 지구로 구획되면서 본격화하는 듯 싶었지만 IMF(국제통화기금)사태로 다시 가라앉았다. 그 동안 3,000여 평으로 규모가 가장 큰 19지구에 88년 제일은행 본점이 신축되고, 이어 1,000여 평이 못 되는 5지구에 91년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지만 그 때 뿐이었다.
변화의 바람은 부나
15일 오후 청진동 옛 무과수제과 뒷편 피맛골. 오가는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히고 맛있는 음식냄새로 정겹던 좁은 골목길 안팎엔 '철거'라는 붉은 글씨와 '목숨을 건 철거반대투쟁'의 격문이 어지럽게 나붙어 있고, 안쪽엔 건물을 비우며 나온 쓰레기가 어수선하게 쌓여가고 있다.
10년이 넘게 잠잠했던 청진동 재개발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9월 초 건축심의를 마친 르메이에르(주)가 청진동 166일대 2,600여 평 부지에 스포츠클럽(연면적 3,000여 평)과 상가(지하2층∼지상5층), 오피스텔(17∼76평, 529개실)을 갖춘 지상20층, 지하7층의 '종로타운' 건립을 서두르고 있다. 르메이에르는 내년 1월 분양과 함께 공사를 시작해 2006년 12월께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도 2005년 복원되는 청계천에 맞춰 종로와 중구 일대의 도심재개발지구 기본계획 재정비에 나섰다. 또 종로1∼6가(2.9㎞) 가로변의 낡은 건물 전면부와 광고물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종로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도 청진동의 변화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시 관계자는 "낡은 목조건물과 오래된 음식점이 많은 청진동은 수복재개발방식을 도입해 현재 분위기를 유지할 것"이라며 "하지만 청계천 주변지역 개발이 도심기능 회복에 있는 만큼 청진동 일부도 주거와 업무기능을 위한 건물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개발과 보전의 공존 모색
재개발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지난 7월말 가게를 비워야 하는 최후 기한을 넘긴 상인들은 "수십 년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내 줄 수 없다"며 버티고 있고, 이곳 술집과 음식점에 둥지를 틀어왔던 예술인들도 "청진동은 서울의 맛과 문화를 향수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명소"라며 재개발지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결국 건물을 지으면서도 피맛골을 보전하는 공존이 모색되고 있다. 르메이에르 이점세 상무는 "기존 폭 2m의 피맛길을 4∼5m로 확장해 건물을 관통하도록 하되 종로에 접한 부분엔 3층 건물을 지어 구름다리로 20층 본건물과 연결하고, 옛 무과수제과점 자리엔 200여 평의 시민쉼터를 만들 것"이라며 "이 지역 60여 개 가게 중 80%가 이미 비웠거나 비울 준비를 하고 있는 등 상인들과의 협상도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다.
최근 재개발된다는 소식에 더 자주 찾는다는 오명석(38)씨는 "피맛길을 보전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정취 그대로를 살릴 수 있겠냐"며 "변화도 어쩔 수 없는 만큼 지금처럼 가족과 함께 편한 마음으로 다시 찾을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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