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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꽃은 감동이다-내 인생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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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꽃은 감동이다-내 인생의 꽃

입력
2003.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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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면 마당 가득했던 작약지금도 그때면 어린시절 향수가

박윤수(패션디자이너)

어린 시절을 보낸 서울 돈암동의 한옥은 앞뒷마당 가득 항상 꽃이 피어있는 말 그대로 ‘꽃대궐’이었다. 꽃을 심고 가꾸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꽃중에서도 5월이면 붉게 꽃대가 오르는 작약을 좋아하셨다. 꽃을 사랑했지만 아버지는 자식들한테는 매우 엄하셨다. 공부에는 뜻이 없고 늘 크레파스만 붙잡고있던 나는 아버지한테 걸리면 종아리를 맞기 일쑤였다.

매를 맞은 날이면 울며불며 뒤뜰로 도망가서는 꽃밭에 엎드려 울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작약의 붉은 색이 어찌 그리 선명하던지….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아버지가 어느날 내가 뒤뜰에서 공책뒤에 그린 그림을 보면서 혼잣말로 “이 녀석은 재주가 참 많겠다”고 하셨단다. 지금도 5월이면 아버지와 작약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그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향수로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결혼전 남편이 준 들꽃다발

'아, 뭔가 통하는 사람이구나'

윤석화(월간객석 대표ㆍ연극배우)

내 인생에 가장 인상적인 꽃은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에게서 받은 꽃이다. 1993년도 산울림소극장에서 ‘딸에게 주는 편지’를 공연할 때였다. 공연이 끝나고 분장을 지우고있는데 그가 분장실로 찾아왔다. 친구로부터 소개를 받은 뒤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공연 잘 봤다며 꽃 한다발을 주는데 세상에 어쩜, 내가 꿈꾸던 딱 그런 꽃다발이었다.

나는 장미나 백합처럼 존재감이 큰 꽃보다 프리지어나 버들가지 같은 그냥 길거리에서 지나쳐도 그만인 들꽃들을 좋아한다. 남편이 준 꽃다발은 딱 그런 꽃들을 정형화된 방식이 아닌 아주 자유로우면서 품격이 느껴지는 방식으로 묶어놓은 것이었다. 그 꽃다발을 받아드는 순간 필이 꽂히는 기분이었다. ‘아, 뭔가 통하는 사람이구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꽃 붉은장미

봉사하며 살라는 의사의 길 생각

양정현(삼성서울병원 진료부원장·유방·내분비외과 교수)

매년 추석 성묘길, 아버님의 산소를 찾을 때마다 나는 늘 붉은 장미를 준비한다. 아버지는 장미꽃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어린시절 정원에는 아버지가 직접 가꾼 장미꽃 넝쿨이 아름드리 어우러져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의사의 길을 인도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직업’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들이 의사가 되었음에도 정작 아버지의 병환을 치료하는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 병실을 회진할 때 폐와 간에 암이 퍼져있는 유방암 환자의 거친 숨결속에서 “선생님, 곧 나아지겠죠?”라는 간절한 희망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나는 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난다.

산소에 장미꽃을 놓아드리며 길을 가다가 우연히 누군가의 손에 들려가는 장미꽃을 보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아버지의 유지를 나는 제대로 받들고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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