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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에서 꽃뱀으로 "너무 망가졌나요?"/27년만에 연기 大변신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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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에서 꽃뱀으로 "너무 망가졌나요?"/27년만에 연기 大변신 장미희

입력
200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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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 '애니깽' 같은 영화에서 선각자나 처연한 여자 역을 했는데 그런 역에 침잠하다 보니 너무 답답했어요. 그 동안 걸쳤던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의 외투를 훨훨 벗어 던지고 경쾌하고 자유로운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영화배우 장미희(46)가 27년 연기인생에서 처음으로 '착한 꽃뱀'으로 변신한다. 27일부터 방영되는 SBS 일일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 (월∼금 밤 9시20분)에서 그는 심술쟁이 부동산 투기꾼인 만보(이순재)를 미모로 홀리는 밤무대 삼류 여가수 연지 역을 맡았다. '흥부네 박터졌네'는 놀부와 흥부를 연상시키는 만보, 춘보 두 형제와 그 가족들의 일상을 코믹하게 그린 드라마. 극중에서 장미희는 부스스한 머리, 슬리퍼에 운동복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해 푼수 연기까지 보이는 등 '사정없이 망가질' 예정이다.

1980년대에 유지인, 정윤희와 함께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고 영화 '황진이'에서는 조선 제일의 선비 화담 서경덕을 녹이는 천하미색을 연기한 당대의 스타 장미희다. 그의 그윽한 분위기와 강렬한 아우라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낯선 변신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9월 출연 제의를 받고 단번에 승낙했다. "연지는 순수하고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연애 대장이기도 하지만 만보가 가진 돈으로 '신데렐라'가 되려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죠." 연지의 캐릭터가 자신의 실제 모습과 너무 딴판이어서 솔직히 어리둥절하지만 신선하고 새롭기도 하다고 즐거워했다. "신인이 연기 훈련을 받는 심정"이라는 그는 만보 역을 맡은 선배 이순재에게 수시로 조언을 구하고 있다.

그의 변신 노력에는 "배우로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깔려 있다. "90년대에 보여드렸던 이미지를 털어내고 21세기를 맞은 장미희의 새 모습을 만들 때가 된 것 같아요."

1975년 TBC 탤런트로 데뷔해 77년 영화 '겨울여자'로 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톱 스타로 떠오른 그는 80년대 영화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불새' 등에서 청초하면서도 에로틱한 양면적 이미지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90년대 들어 그는 "아름다운 밤이에요"와 "똑(떡) 사세요"라는 말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았다. "아름다운 밤이에요"는 장미희가 대종상 영화제에서 말했던 수상 소감이고 "똑 사세요"는 99년 MBC 드라마 '육남매'에서 했던 대사다. 이것을 코미디언 이경실(37)이 흉내내면서 장안에 화제가 됐다.

"사실 '떡 사세요'라는 대사를 그렇게 어색하게 한 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양반집 부인이 집안이 몰락해서 갑자기 떡을 팔러 시장에 나왔는데 자연스럽게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요?" 그는 계산된 연기가 웃음거리가 된 것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게 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라서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싫든 좋든 27년을 관심권에 머물러 있던 스타답다.

그의 삶에서 연기 외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명지대 연극영상학과 교수인 그는 89년부터 줄곧 강단에 서 왔다. MBC '러브레터'와 SBS '첫사랑'으로 이름을 알린 신인 배우 조현재(22)이 연극영상학과에 재학하고 있는 제자다.

애초의 그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내가 꿈꿨던 건 이게 아니야' 하는 생각이 가끔 들었는데 역설적으로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됐네요." 시간당 8,000원을 받는 강사로 출발한 그는 몇 년 전부터 학과장을 맡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연기만 계속 했으면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하기보다 안주했겠죠. 학교에서는 저보다 어린 학생들에게서 새로움에 대한 열정을 배웁니다." 자신의 표현대로 학교는 장미희에게 가장 큰 '백그라운드'다.

대학교수 말고도 그의 일은 많다. 2002년 5월 3년 간의 일정으로 출범한 제2기 영화진흥위원회의 비상임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반전 활동과 환경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의 손짓이 끊이지 않는다.

바쁘게 살고 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까? 그러나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밖에서는 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은 외롭다기보다는 절실하죠." 95년 '애니깽' 출연 당시 멕시코에서 얻어온 고양이 '메리다'를 비롯, 진돗개 '통일', 삽살개 '양배추'와 같이 지내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때론 인생에 동반자가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어요. 시골에서 손수 농사를 짓고, 소박한 밥상 앞에 마주 앉아 정담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상대 말이에요."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언제였느냐고 묻자 "사람들이 나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를 등 뒤에서 수근거릴 때였다"고 말했다. 5공 당시의 괴소문에 대한 얘기였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나서 가는 거죠. 가다 보면 또 상처를 받고 아파하겠지만, 그게 인생이 아닐까요?" 잠시 어두워졌던 그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시련의 세월을 헤치고, 상처를 극복해 낸 의지가 배어 있는 너르고 밝은 웃음이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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