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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아무리 궁금해도 물을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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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아무리 궁금해도 물을 수 없는 것

입력
200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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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하이텔 시절. 대화방에 사람이 많아지면 몇몇은 '잠수'를 하곤 했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자기들만의 채널로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귓속말' 기능인데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했다.한 동호회 대화방에서 벌어진 일이다. 12명 정원의 대화방에서 둘이 잠수를 하고 있었다. 둘 다 대학생이었고 선남선녀였다. 남학생은 글발과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친구였고 여학생은 당차고 씩씩했다. 두 사람 다 신입이어서 크게 친해질 계기도 별로 없던 차였다. 그런데 그들이 안 하던 잠수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태연하게 떠들고 있었지만 사실 은근히 둘의 잠수에 내심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의 글이 모두의 화면에 떠올랐다. 실수로 귓속말 키를 누르지 않은 것이었다. "네가 나랑 한 번 잤다고 해서 그런 말까지 할 권리는 없어."

침묵 또 침묵.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너무 너무 너무 궁금했지만 입밖에 내어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둘이 황급히 대화방을 빠져나간 뒤 남은 사람들은 짐짓 딴 얘기를 해보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우리 뇌리엔 그저 '잤구나'라는 세 글자만이 네온사인처럼 번쩍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나 둘 대화방을 나가 흩어졌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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