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 이후 청와대와 야권이 서로 공수(攻守)를 바꿔가며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재신임 여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야권이 국민투표에 대해 유보 또는 거부 입장을 표명한 현재는 노 대통령이 공세를 취하고 있는 형국. 그러나 검찰의 SK비자금 사건 수사, 3야 공조, 호남 민심, 노 대통령의 향후 언행 및 다른 측근의 비리 등 정치권 안팎의 4가지 변수에 따라 정국은 앞으로도 몇 차례 더 요동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재신임 정국의 '태풍의 눈'은 무엇보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검찰 수사다. 검찰은 이미 최씨가 대선 직후 SK측으로부터 11억원을 받았고, 이 돈 중 일부가 대선자금 채무 변제에 사용된 정황을 포착한 상태다. 특히 검찰이 "이 사건은 대선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고, 노 대통령도 시정연설에서 최씨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점으로 미뤄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이 문제를 보고 받고도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수사 결과 이 같은 의혹 중 일부라도 사실로 밝혀질 경우 여론조사에서 재신임과 불신임 비율이 뒤바뀌고, 국민투표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이 변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뭐가 나올지 몰라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해 초조한 내부 기류를 내비쳤다.
노 대통령의 돌출발언이나 행동이 정국을 또 뒤흔들 불씨가 될 수 있다. 신당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기습적인 제안으로 지금까지는 정국을 주도하고 있지만, 같은 논리로 한꺼번에 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도술씨 외 또 다른 측근 비리들이 막판에 터져 나올 지 여부도 관건이다. 특히 선앤문 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에 대한 수사가 끝나지 않은 것이 여권으로서는 불안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등 3야의 공조도 재신임 정국의 흐름을 바꿀 '뇌관'으로 꼽힌다. 야당은 노 대통령의 국민투표 제안을 측근 비리 문제에서 탈피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로 못박기 위해 대정부 공세를 한층 강화할 태세다. 당분간은 야당이 공동전선을 강화, 정국의 대결 구도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그러나 각각 지지기반이 다른 3당의 공조에 균열이 생길 경우 정국도 크게 방향을 틀게 된다.
대선 때 노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었던 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민심의 향배는 각 당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변수다. 호남 민심은 참여정부 출범 후 인사 소외 및 정책 차별 등으로 현 정권에 등을 돌린 듯 했으나, 최근 들어 노 대통령에게 급격히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노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호남쪽 찬성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대통령이 좋아서 라기보다는 자기 손으로 당선시킨 대통령이 낙마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은 것"이라며 "특히 노대통령이 불신임될 경우 결국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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