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14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정국의 무게중심을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측근비리'로 옮겨놓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현재로선 승산이 별로 높지 않은 국민투표를 비리 공세를 통해 우회하면서, 향후 정치상황과 민심의 변화를 노려보겠다는 의도다.최 대표는 이날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비리의혹의 진상공개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노 대통령은 처음 재신임의 이유로 최씨 비리를 거론했는데, 도대체 대통령의 진퇴를 물어야 할 만큼 심각한 비리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최 대표는 따라서 "국민이 최소한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재신임을 물었는지 알아야 하는 만큼 국민투표는 의혹의 전모가 밝혀진 후에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비리의혹 규명이지, 국민투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주목할 대목은 최 대표가 '대통령 탄핵'을 두 번이나 입에 담은 사실이다. 최 대표는 먼저 "노 대통령이 9월초 법무장관의 최씨 관련보고를 받고도 검찰에 수사지시를 하지 않았다"며 "측근비리를 숨기고 봐준 것 하나만으로도 탄핵 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비리가 당선 이후 대통령과 관련돼 있다면 재신임 여부문제가 아니라 탄핵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검찰 수사에서든, 특검을 통해서든 노 대통령이 비리에 연루된 것이 드러나면 곧바로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사실 한나라당의 상당수 당직자들은 "수사만 제대로 되면 뭔가 나오게 돼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측근 한명이 뇌물 10억원을 받았다고 대통령이 자리를 걸었단 말이냐. 검찰수사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 같으니까 재신임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이날 최 대표 발언도 맥을 같이 한다.
대통령 탄핵 안은 국회 재적 과반수 발의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통과되는 데 현재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야당 의석이 221석으로 전체(272석)의 3분의 2를 훌쩍 뛰어 넘는다.
결국 한나라당의 대응은 최씨 등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의 진상이 '기대 만큼' 밝혀질 때까지 국민투표를 미루고, 진상규명 과정에서 대통령의 비리가 입증되면 곧바로 탄핵으로 간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어떤 경우에도 야당에게 위험부담이 큰 국민투표는 피할 수 있는 셈이다.
당초 "국민투표가 재신임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변했던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국민투표 위헌론'을 굳이 반박하지 않고 공조만을 강조하고 있는 점도 이 같은 속내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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