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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29>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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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29>발레

입력
2003.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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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세의 모후 카트린드메디시스는 궁정에 모인 고귀한 손님들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아들 앙리3세가 즉위한 뒤 섭정을 사임하기는 했으나, 그녀는 프랑수아2세, 샤를9세, 앙리3세로 이어지는 프랑스 국왕 3대의 어머니였고, 따라서 그 나라의 최고 어른이었다. 모후는 이내 몇몇 귀족들, 시종들을 이끌고 공연을 시작했다. 기록으로 남은 역사상 최초의 발레 공연이었다. 1581년 10월15일이었다.카트린드메디시스가 공연한 발레의 표제는 '왕비의 발레 코미크'였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마녀 키르케의 전설에서 소재를 끄집어낸 이 작품의 대본과 안무는 이탈리아인 발다사리노 데 벨조조조가 맡았다. 벨조조조의 정의에 따르면 발레란 '다양한 악기들의 화음 아래 함께 춤추는 사람들의 기하학적 배열'이다. 기록상의 첫 발레는 파리의 궁정에서 공연됐지만, 기록상의 첫 안무가가 이탈리아 사람이었듯 발레는 그보다 한 세기쯤 전 이탈리아의 궁중에서 탄생했다. 최초의 발레리나로 기록된 카트린드메디시스도, 프랑스 왕비이기는 했지만, 핏줄로 보면 피렌체 메디치가 출신의 이탈리아 여자다.

그러나 이 이탈리아산 예술이 둥지를 튼 곳은 프랑스였다.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14세는 일생 동안 발레의 열렬한 후원자였으니, 지금의 파리 오페라 극장 전신인 왕립무용아카데미(1661)를 세운 것이 그다. 발레 용어 대다수가 프랑스어인 것은 그런 사정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이래 세계 발레를 주름잡은 러시아 발레도 쥘 조제프 페로, 마리위스 프티파 등 프랑스 출신 무용가 겸 안무가들에 의해 그 초석이 놓였다. 한국 출신 발레리나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강수진씨일 것이다. 이 아름다운 여성의 험하디험한 발을 보면, 잔혹한 예술이다, 발레는.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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