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권좌를 지켜온 아시아의 최후의 장기 집권자 마하티르 모하마드(77) 말레이시아 총리가 31일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다. 지난해 6월 "내년 은퇴"를 발표할 때만 해도 정치적 쇼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그는 약속대로 평화적인 권력이양을 실행에 옮김으로써 새로운 아시아의 모델을 다시 한번 만들어냈다.아시아의 모델이란 그에게 낯선 말이 아니다. 1997년 아시아를 휩쓴 환란 이후 마하티르 총리는 줄곧 '아시아적 가치'를 강조하며 세계화 풍조 속에서 아시아의 정체성을 고집스레 지켜왔다. 당시 독자적인 환란 처방책이 그의 뚝심있는 경제적 안목을 서방세계에 알렸다면 이번 정계은퇴는 독재와 피로 물든 아시아의 정치사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인식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1981년 총리에 오른 뒤 지금까지 내리 5차례 연임한 마하티르 총리가 처음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은 것은 총리 취임 이듬해인 82년 제창한 '룩 이스트' 운동을 통해서이다. 일본의 근면성과 충성심, 단결력을 배워 '말레이시아 주식회사'를 만든다는 이 구상은 주석 팜유 고무 등 원료수출에 의존해온 가난한 농업국 말레이시아를 세계 17위의 무역대국이자 첨단산업국가로 탈바꿈시켰다. 룩 이스트 운동 20주년을 맞은 지난해 10월 그는 장기침체에 들어서 있는 일본 대신 본받아야 할 경제시스템으로 한국과 중국을 지목, 새로운 변신을 꾀했다.
아시아 환란은 지도자로서 마하티르의 위상을 최고조에 올려놓았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처방으로 제시한 엄격한 국제금융시스템 및 시장개방을 거부하고 아시아적 가치를 앞세운 독자노선을 선택했다. 변동환율제를 고정환율제로 바꾸고 외환·주식 거래를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그의 해법은 IMF의 처방과는 정반대의 것이어서 "국제자유시장의 대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단자"라는 혹독한 비난까지 받았다.
98년 10월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제6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적극적인 시장개방으로 환란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위기의 주범은 제어할 수 없는 국제자본"이라며 반박한 일화는 유명하다.
IMF는 그후 처방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고 말레이시아는 그의 해법에 따라 무난히 환란을 극복, 금과옥조처럼 유행하던 세계화에 경종을 울렸다.
미국 등 서방세계가 주도하는 세계화와 9·11 이후의 대 테러전쟁에 대해 끊임없이 독설을 퍼붓는 것도 이때의 자신감이 밑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다.
마하티르의 우직한 민족주의 성향은 그러나 정적에게는 가혹한 탄압으로 둔갑했다. 98년 정적인 안와르 이브라힘 당시 부총리를 직권남용 및 동성애 등의 혐의를 제거하자 국제사회는 들끓었다. 후진적 독재정치의 전형으로 비쳐진 이 사건으로 마하티르는 '아시아적 가치'라는 이미지에 '독재자'라는 오명이 덧씌어졌다. 마하티르 사퇴 이후의 정국에 대해 여러 소문이 나도는 것도 권력에 대한 그의 강한 집착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난해 그가 후계자로 지목한 온건 성향의 압둘라 바다위(63) 부총리가 그의 자리를 이어받을 전망이지만 바다위 부총리가 마하티르의 외풍없이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마하티르 총리는 최근 정계은퇴에 즈음해 펴낸 '마하티르-22년, 22개의 목소리'라는 자서전에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처럼 사임 후 공직에 다시 등장할 생각은 없다"고 밝히며 "사임하면 무엇보다 늦잠을 자면서 맘껏 여유를 부리고 싶다"고 말했다.
마하티르가 물러난 뒤 말레이시아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 될 지, 국제사회는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 통치스타일
마하티르 총리의 통치 스타일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자본에 대한 그의 태도와 회의 주재 방식 등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국제정치적으로 반 세계화와 반미 쪽에 서왔던 그는 그러나 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임기 내내 안간힘을 썼다. 그가 미국자본에 적대적이었던 때는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투기자본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와 대결할 때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국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로부터 속다르고 겉다르다는 평가마저 듣는다.
그는 또 주요 회의를 주재할 때마다 10시간 이상 마라톤 회의를 지속하고 저녁까지 손수 대접하는 정열을 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그는 회의 도중 꼼꼼히 암기한 경제 통계를 들이대면서 좌중을 놀라게 한다. 정책의 줄기 정도만 챙기는 대부분의 지도자와 달리 정책을 매우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보기 드문 지도자라는 게 현지 언론들의 평가이다. 그의 이런 기질은 자연과학(의학)을 전공한데서 연유하는 것 같다.
이 같은 통치 스타일 때문에 동남아시아 언론들은 그의 22년의 임기를 마키아벨리적인 독재와 국익을 향한 실용주의, 두 단어로 풀어나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펴왔다는 점에서 그와 박정희 전대통령간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마하티르 비판론자들은 그가 장기집권의 토대를 깔기 위해 1980년대 중반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정적의 대부분을 제거했던 점을 강조하면서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한국민들의 평가가 이중적이듯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 독재정치를 펴온 마하티르에 대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평가도 이중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마하티르 말…말…말
"미국과 유럽은 제국주의의 부활을 노리며 세계를 다시 식민지화하려 한다"―2003년 9월 25일 유엔에서의 마지막 고별 연설에서.
"섹스와 폭력을 부추겨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는 언론을 아놀드 슈워제네거 식으로 터미네이트하고 싶다"―2003년 6월 기자회견에서.
"선진국 지도자들은 사람을 죽여 문제를 해결하는 석기시대 사람이 돼 버렸다"―2003년 2월 콸라룸푸르의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에서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며.
"벌레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약자라해서 가만히 있겠느냐"―2003년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서방의 대 테러전을 비난하며.
"환투기로 아시아인의 고혈을 빨아먹는 소로스는 히틀러와 똑 같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2002년 12월 미국의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가 프랑스 법원으로부터 내부자거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자.
"호주는 아시아국가인지 서방국가인지 선택하라"―2002년 11월 호주 신문과의 회견에서 호주 정부가 대 테러전에서 미국에 지나치게 추종한다며.
"아시아는 소수국가에 의한 착취수단에 지나지 않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이를 통해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려는 자들과 싸워야 한다"―2002년 10월 동아시아 경제정상회담 연설에서.
"9·11 이후 미국이 이슬람 국가들을 공격하는 것은 새로운 인종차별이다"―2002년 9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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