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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군포시 덕고개마을 "구릉터 당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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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군포시 덕고개마을 "구릉터 당숲"

입력
2003.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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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옛날에는 그다지 눈길을 주지않던 주위의 것들에 관심과 애정을 보인다. 칠십을 넘기신 부모님은 시골의 대소사와 가까운 인척의 안부에 예전보다 더욱 민감하시다.여행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세웠던 15개 산악형 국립공원을 모두 다녀보겠다는 목표에 묻혀 잘 보이지 않았던 집 앞 모락산과 청계산에 점점 마음이 끌린다. 마을숲을 찾아 떠난 답사 역시 세상에 알려진 유명한 곳을 찾다보니 정작 내 주변의 마을숲은 눈에 띠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사는 곳 옆에 아름다운 마을숲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오늘 마을숲 답사지는 군포시 속달동 덕고개마을 '구릉터 당숲'이다. 서울처럼 대도시는 아니지만 명색이 시지역인 만큼 군포시에 뭐 별다른 마을숲이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비교적 보존이 잘 된 활엽수림을 도시 근처에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길을 나섰다. 20분간의 짧은 차여행 뒤 '구릉터 당숲' 들머리에 서니, '가까운 곳에 이런 마을숲이 있었다니…'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구릉터 당숲의 주인은 수령 100∼300년 내외의 서어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팥배나무, 느티나무 등으로, 틈틈이 어린 전나무가 그 밑에서 자라고 있었다. 주변 숲이 대부분 낙엽송, 잣나무 인공조림지인데 비해 이곳만 활엽수림으로 남아 있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래 이 구릉터 당숲은 17세기 말 효종의 넷째 공주인 숙정공주와 부마인 동평위 정재륜(당시 영의정인 정태화의 아들)의 쌍묘가 이 곳에 만들어지면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 숲은 동래 정씨 소유로 오랫동안 관리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구릉터 당숲을 제외한 주변 산을 일본인에게 매각하면서 점차 베어지기 시작하였다. 정형수(鄭亨秀, 83세)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원래 구릉터 당숲 주변엔 전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등이 많았는데, 전나무는 배의 돛대로, 소나무는 건축용재로, 느티나무는 총머리판으로 쓰기 위해 마구 벌목되면서 헐벗게 됐다. 해방 이후 이 숲은 국가귀속재산으로 처리됨에 따라 국가가 도유림으로 소유권을 전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혼란기에도 구릉터 당숲 만큼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조선왕실의 묘지 부속림이자 당숲이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되었다. 지금도 철망으로 구분된 당숲 앞에 서면 수백년간 이 땅에 뿌리내려 살아온 활엽수 숲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인지 덕고개 마을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마을의 안녕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제사를 이 당숲에서 지내왔다. 주민들은 이 숲의 신령함이 자신들을 돌보아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당숲 주변에선 나뭇가지 하나 건드리지 않을 만큼 조심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매년 음력 초하루 저녁 11시∼12시 사이에 마을주민들이 '터줏가리당' 앞에 모두 모여 구릉고사라 불리는 동제(洞祭)를 올리고 있다. 2002년에는 이 숲의 생태적 건강성과 당숲이라는 민속학적 가치가 인정돼 '제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숲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옛날 같으면 마을마다 주민들의 정서가 담겨있는 마을숲이 곳곳에 있었을 텐데, 지금은 도시지역의 숲부터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 곳에 찾아간다고 할지라도 내가 오랫동안 살아갈 곳이 아니라면 그곳의 마을주민들과 똑같은 느낌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구릉터 당숲'은내가 오랫동안 접할 수 있는 진정한 마을숲이라 할 수 있다.

/배재수 임업연구원박사(forestory@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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