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정상을 수놓은 은빛 억새의 은은한 물결 너머로 서해의 수평선이 아련하게 가물거린다. 오서산(烏棲山) 정상에서 맛볼 수 있는 풍경이다. 꺼질 듯한 서해의 서정적 운치가 더해지면 억새의 가을 정취가 더욱 짙게 풍겨나온다.충남 제2의 고봉인 오서산(해발 791m)은 서해 천수만을 바라보며 우뚝 솟아 '서해의 등대산'이라 불리는 곳. 천수만 일대를 오가는 배들의 나침반이나 등대 구실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올망졸망한 서해안의 산들 중에서는 드물게 높고 가파르다. 산행도 그래서 만만치 않다. 산 정상부 일대에서 충남 홍성군, 보령시, 청양군 등 세 구역으로 갈라지는데, 산행은 서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홍성군이나 보령시 양쪽에서 출발할 수 있다.
홍성군 광천읍에서 10여분 차를 타고 가면 광천리 상담마을에 등산로 입구가 나오는데, 차는 정암사까지 올라 갈 수 있다. 정암사는 고려때 승려 대운대사에 의해 창건된 전통사찰이지만 지금은 규모가 조그맣다. 사찰 건물에서 옛 자취를 찾을 수는 없지만 사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느티나무들은 수백년생들로 그 옛날의 숨결을 전한다. 사찰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본격적 산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초반 산행이 힘겹다. 산세가 가파른데다 등산로마저 거의 일직선으로 나 있어 경사가 급하다. 무성한 잡목이 둘러싸고 있어 시야도 좁다. 한 시간 정도 묵묵히 올라야 한다. 답답하더라도 무리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오르는 편이 낫다.
중간 중간, 바위 언덕에 이르면 조금씩 드러나는 탁 트인 서해안의 조망이 위안을 준다. 가끔씩 까치 몇 마리가 등산객을 맞는다. 오서산은 이름처럼 예전에 까마귀와 까치의 보금자리였던 곳. 지금은 까마귀를 찾아보기는 힘들고 까치 몇 마리가 기웃거릴 뿐이다.
한 시간 정도 힘을 쏟으면 어느덧 완만한 곡선의 능선 고개에 닿는다. 벅차 오르던 숨결이 한결 편안하게 돌아온다. 20여분을 더 오르면 주능선에 닿는다. 이 때부터 나무 숲길은 끝나고, 탁 트인 광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짓눌렸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경치가 장관이다.
거의 평지와 다름없이 완만하게 이어진 산마루. 압권은 바로 무성하게 자란 억색 군락들이다. 약 2㎞의 주능선 주변은 은빛 억새로 지금도 서서히 물들고 있다. 익어가는 억새는 10월말이면 최고조에 달한다.
억새밭 너머로는 충남 지역의 서해안이 한 눈에 잡힌다. 광천천, 청광천 등 소규모 하천들이 평야지대에서 유유히 곡선을 그리며 굽이치다 서해 천수만에 닿는다. 천수만 너머로 안면도가 가물거리고 그 뒤로 서해안의 수평선이 희뿌옇다. 억새밭 가운데 마련된 팔각정이 일종의 조망대다. 서해로 기우는 가을 햇살이 은빛 억새에 부딪혀 더욱 찬란하게 눈부신다. 하늘거리는 억새는 그리운 사람을 더욱 그립게 한다. 하산은 주능선을 따라가다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쪽으로 내려가지만, 자가 운전으로 주차를 시켰다면 광천읍쪽으로 다시 내려가야한다.
산행후 코스는 광천 재래시장이다. 김장철을 맞아 새우젓 쇼핑까지 곁들일 수 있는 곳이다. 광천은 예전에는 각종 고기잡이 배들이 몰려 서해안의 대표적 수산물 집산지로 이름을 날렸지만, 60년대부터 항구로서의 이름은 퇴색됐다. 대신 토굴 새우젓이란 독특한 젓갈 생산법을 개발해 국내 대표적인 새우젓 생산지로 유명하다. 토굴 새우젓은 산중턱에 판 토굴에서 14∼15도의 온도로 3개월간 숙성시켜 맛을 들인 것이다. 올해 8회째를 맞은 새우젓 축제가 10일부터 14일까지 열려 전국 주부들의 입맛을 잡았다.
/홍성=글·사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오서산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광천IC에서 빠져나와 광천읍 쪽으로 우회전한다. 광천읍으로 들어와 오서산행 표지판을 따라 10여분을 가면 상담마을이 나온다. 상담마을에서 출발해 정암사를 지나 서부능선을 타고 정상에 올랐다가 보령시 청소면 성연저수지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산행코스지만 거꾸로 성연저수지에서 출발해 정암사쪽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광천읍에 대우장(041-642-0304), 뉴월드파크(641-6766), 신촌파크(641-6611) 등 객실 20개 이상의 장급 여관이 세 군데 있다. 홍성군청 문화공보실 (041) 63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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