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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3 억새/ 그밖의 억새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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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3 억새/ 그밖의 억새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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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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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백발처럼 쓸쓸하게 흔들린다. 깊어가는 가을의 서정을 가슴에 담아두기에 억새밭만한 곳이 없다. 억새는 이듬해 봄까지 구경할 수 있다. 아침이슬을 맏아 반짝거리는 영롱한 모습, 눈을 맞은 설화, 봄 바람에 꺾어진 처연한 아름다움 등등. 그러나 억새꽃의 절정은 지금부터 11월 중순까지이다. 전국의 억새 명소를 찾아간다.화왕산(경남 창녕군)

화왕산은 봄과 가을, 일년에 두 번 매혹적인 색깔을 갈아 입는다. 봄에는 온통 산을 불태우는 듯한 진달래가 압권이고, 가을이면 정상의 평원이 은빛 억새물결로 가득 찬다. 3시간 남짓한 화왕산 산행은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창녕여중에서 시작한다. 40분쯤 오르면 도성암. 통도사의 부속암자로 깔끔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도성암에서 정상에 오르는 50여분의 여정은 고통스럽다. '환장고개'로 이름 붙여진 이 가파른 언덕은 네 발로 기어올라가야 한다. 고개가 끝나는 곳이 정상. 화왕산성이 에워싼 가운데에 밋밋한 분지가 있는데 이 곳이 억새의 군락지이다. 5만 6,000여평의 분지에 억새꽃이 가득하다.

화왕산에 들렀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우포늪. 이곳에서 억새와 비슷한 갈대의 바다를 구경할 수 있다.

민둥산(강원 정선군)

이름 그대로 산꼭대기에 나무가 없는 산이다. 산나물이 많이 채취되는 곳이어서 옛날부터 1년에 한번씩 불을 질렀다. 그래서 정상 부분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요즘은 일부러 불을 내지는 않지만 여전히 산나물이 많이 난다. 그 산나물밭에 가을이면 억새꽃이 터진다.

민둥산은 가족 산행으로 제격인 산. 너덜지대 등 힘든 코스가 없고 산행시간도 짧다. 가장 긴 산행길도 왕복 4시간이면 충분하다. 아이를 앞세우고 젖먹이를 업은 채 산을 오르는 이도 많다. 정상에 서면 장관이다. 태백산을 비롯한 백두대간의 연봉이 코앞에 다가오고 발 아래로 증산읍내와 동남천이 아득히 펼쳐진다.

한라산(제주)

가을의 한라산 자락은 몽땅 억새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사가 완만해 접근하기도 쉽다. 한라산을 빙빙도는 순환도로는 물론 관통로 곳곳에서 억새를 발견할 수 있어 따로 등반이 필요없다. 가장 유명한곳은 성산 일출봉에서 성읍민속마을을 연결하는 1119번지 지방도로의 양쪽과 북제주군 조천읍. 1119번 도로는 '억새오름길'이라고 불린다. 오름이란 제주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은 분화구 언덕을 뜻한다.

한라산을 배경삼아 오름이 얹혀있는 억새군락은 이국적인 정취마저 풍긴다. 조천읍에서 가장 넓은 억새밭이 있는 곳은 교래리 샘물공장 앞. 일명 산굼부리로 불리는 곳이다. 1118번,1112번 지방도로의 교차점이다. 5만여 평의 평원에 억새가 바다처럼 펼쳐 있다. 솜구름이 내려온 듯한 그 곳에는 관광객이 많이 몰린다. 제주의 억새명소를 또 한군데 꼽으라면 단연 마라도이다. 가을이 익으면서 섬 전체가 완전히 억새풀에 뒤덮힌 억새섬이 되어버린다.

명성산(경기 포천군, 강원 철원군)

신라의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향할 때, 여정의 중간에서 커다란 바위산이 그와 함께 통곡했다. 경기 포천군과 강원 철원군의 경계인 명성산은 그래서 슬픈 이름을 지녔다. 고집스럽게 이마를 쳐든 삼각봉의 9부 능선에 어마어마한 억새 능선이 펼쳐진다. 명성산의 억새는 남한지역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워 억새 시즌을 알린다.

명성산이 억새의 명소로 더욱 이름을 날리는 이유는 주변경관이 빼어나기 때문.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그 경치에 매료돼 별장을 지었다는 산정호수가 등산로의 시작이다.

/권오현기자

● 억새 감상포인트

억새는 솜 같은 꽃을 피운다. 무리지어 있는 모습은 화려하지만 하나 하나 눈여겨 보면 연약하기 짝이 없다. 꽃술은 빛을 거의 관통시킨다. 그래서 햇살의 양과 방향에 따라 그 모습과 정한이 다르다.

억새는 하루에 세 번 모습을 바꾸고 모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은억새, 붉은 노을에 비껴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금억새, 달빛을 머금은 솜억새가 그 것이다. 그래서 억새를 보기 위해 산을 오를 때에는 시간을 잘 선택해야 한다.

은억새를 보려면 야간산행 후 일출에 맞춰 정상에 닿아야 하고, 금억새는 일몰 이후에 산을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프래시 등이 필수이다. 일반인들이 낮에 억새를 보려면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을 피하는 것이 좋다. 오전8∼10시, 오후3∼4시가 적당하다. 기울어져 있는 태양을 마주하고 역광으로 봐야 반짝거리는 억새밭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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