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정국'은 이라크 추가 파병, 신(新)노사관계 추진, 사회갈등 조정 문제 등 청와대가 해결해야 하는 국정 현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우선 반기문 외교보좌관은 14일 APEC정상회의 기간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 등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에서 "재신임 문제로 상황이 바뀌었다"며 "한미 정상회담에서 파병에 대한 가부가 논의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지만 재신임 문제가 파병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벌써부터 '파병 결정은 노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국민투표가 판가름난 후, 즉 12월 말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재신임 여부에 정치적 운명을 맡긴 노 대통령이 국민투표 결과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파병 문제를 결정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친노세력'의 기반을 넓혀가야 할 처지에 있는 노 대통령이 어느 쪽으로 결정해도 이득이 될 게 없는 문제에는 손을 댈 필요가 없다.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 NSC 내의 파병 반대론자나 신중론자들은 시간을 벌었다고 느끼는 듯 상당히 느긋해져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반대로 파병 찬성론자나 미국과 직접 상대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인사들 사이에서는 "괴롭다", "걱정이 많다", "나도 모르겠다"등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재신임 문제로 파병 논의는 어떠한 단계에도 와 있지 않은 셈이 됐다"고 말한 것은 파병 논의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뜻이다.
신노사관계 방안은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으나 노동계가 '재신임 정국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생겼다. 노 대통령은 연내에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 같지 않다. 방폐장 설치 등 사회적 갈등 문제도 갈등 당사자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협의를 꺼릴 것이기 때문에 표류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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