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마다 물집 잡히는 데가 다르지요?"초등학교도 안 나온 농부가 지나가듯 던진 한 마디에서 시간의 더께를 보았다. 인생의 진실이 옷깃을 스치는 것을 알았을 때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그는 그것을 문자로 남긴다.이윤기(56)씨가 네 번째 소설집 '노래의 날개'(민음사 발행)와 연작 장편소설 '내 시대의 초상'(문학과지성사 발행)을 펴냈다. 3년 만의 신작이다. 그 동안 신화 이야기, 에세이 등 쉴 새 없이 글을 '출산해' 왔다. "그런 얘기를 합디다. 소설가가 소설은 안 쓰느냐고. 그 때마다 10월 넘어 보자고 했소." 14일 만난 그는 두 권의 책을 앞에 두고 "정치가가 정치 생명을 걸었다고 말하듯 나도 소설가로서의 생명을 걸고 한판 승부를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단편이라는 현미경으로 시대를 해부하기, 장편이라는 망원경으로 시대를 조망하기. 소설가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모든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도 설명했다. "단편은 굴대, 장편은 바퀴 같은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본 세상의 중심이 단편에, 함께 굴러가는 세상의 움직임이 장편에 있다." 그 세상은 물론 소설가가 살아가는 지금, 이곳이다.
'내 시대의 초상'이 그러하다. 그가 그린 시대의 초상에는 열다섯 살에 임금님께 들은 한마디가 황송해서 여든 평생을 임금님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떠난 할머니도 있고('샘이 너무 깊은 물'), 문중의 전통만 고집하다가 아들 혼기를 놓쳐 외국인 며느리를 맞게 된 아저씨도 있다('뿌리 너무 깊은 나무'). 회사에 인생을 걸어 전무까지 됐다가 내던져진 친구도 있고('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 고국과 외국을 드나들며 떠도는 삶이 편안한 친구도 있다('호모 비아토르'). 닫혀진 문 틈에 걸린 19세기의 끝자락부터, 막 열려진 문 사이로 들이닥친 21세기의 흰 이마도 보았다.
'나비 넥타이'의 날렵한 글쓰기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그가 들려주는 오래된, 다사로운 이야기에 현기증이 인다. 그만큼 깊고 아득하다. 그래서 좀더 작고 섬세한 얘기 모음인 단편집으로 눈을 돌리니 짧은 순간 투욱, 던지는 삶의 무게에 또 아득해진다. 그의 글쓰기는 이제 가볍고 매끄럽게 흐르지 않는다. 짧지만 깊고 무겁다. "나는 문학을 오해했다. '모순'을 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문학은 진실을 슬쩍 건드리는 것이다. 선사의 말씀 한 마디처럼."
유행가의 노랫말까지 빛나는 통찰임을 알았다. 안경잡이 훈련병이 휴식시간 10분간 부른 김민기의 '친구'('노래의 날개'), 앞일 모르는 인생을 깨닫고 가슴에 사무친 미소라 히바리의 '강물이 흘러가듯이'('지도') 같은 것들. 어리석게도 시간에 저항했던 사람들에게는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라는 노랫말보다 가혹한 것은 없다('봄날은 간다'). 진실은 너무 무거워 작가는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스쳐 옮김으로써 자신의 할 일을 한다.
기꺼이 그 일을 맡고 있는 그에게 소설의 시대는 갔는가를 물었다. "라틴어 '홀로룸 바쿰'은 진공에 대한 거부라는 뜻이다. 사회는 '진공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문학의 땅이 황폐해질 때, 시대를 보는 눈이 가장 정확한 사람들은 돌아올 것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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