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아 온 정부 고위 관료, 정치인, 군장성 출신의 공기업 감사들이 해외 연수비를 부풀려 신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백만원씩의 공금을 착복하다 적발됐다. 일부 인사들은 사전에 고급 호텔과 항공기 좌석을 이용하겠다고 회사에 신청해 돈을 받아낸 뒤 호텔·항공기 좌석 등급을 낮춰 이용해 차액을 챙기는 수법도 사용했다.14일 경찰청 수사결과에 따르면 아태재단 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황모(64)씨는 한국마사회 감사로 재직하던 1999년 6월 9박10일 일정으로 국제감사협회 연수차 캐나다로 떠났다가 현지에서 일행과 떨어져 뉴욕을 여행, 여행경비 818만원 중 550여만원을 임의 사용했다. 황씨는 경찰에서 "아태재단 해외지부 직원들을 격려하러 갔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이모(49)씨는 한전기공 감사로 있던 같은 해 11월 지중해 연수를 가면서 회사에 미리 신청한 호텔 및 비행기 좌석 등급을 낮춰 생긴 차액 460만원을 호화쇼핑 등에 사용했다. 이밖에 한국수자원공사는 해외 연수를 갈 경우 감사에게는 일반 직원보다 2.12배나 많은 경비를 지급하는 등 공기업의 감사 특혜가 만연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날 공기업 감사들에게 해외 연수를 알선하면서 회원사들에 실제 연수비보다 많은 돈을 요구해 2억3,000여만원을 가로챈 한국감사협의회 사무총장 최모(64)씨를 사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 또 협의회 주최 해외 연수에 참가하면서 호텔·항공기 좌석 등급을 낮춰 차액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한국마사회, 포스코, KB신용정보, 농업기반공사, 전문건설공제조합 등의 전·현직 감사 및 비서실장 등 13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한국수자원공사 감사 등 23명에 대해서는 해당 기업에 통보 조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국감사협의회 사무총장 최씨는 매년 서너 차례씩 부설 기업경영개발원 명의로 회원사를 상대로 해외연수를 실시하면서 허위 연수비 사용내역서를 발부, 차액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99년 6월부터 최근까지 34개 공기업으로부터 2억3,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다.
경찰 관계자는 "공기업 감사들은 대부분 2급 이상의 고위 공무원, 청와대와 국정원 출신, 국회의원 비서관, 정당인, 전직 군장성 출신이라 회사 내부에서도 연수비 사용내역에 대해 전혀 추적하지 않는 등 허점이 많았다"며 "감사들은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수십년 동안의 관행인데 무슨 잘못이냐'고 반응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다수 대기업 감사들은 "해외연수가 아니라 해외관광으로 일정이 채워져 있고, 경비도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됐다"며 연수신청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나 공기업 감사들과 대조를 이뤘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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