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3일 내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취임 후 두 번째로 국회를 찾았다. 노 대통령을 맞는 국회의 태도는 냉랭했다.행정부와 입법부의 불편한 관계는 본회의전 국회의장실에서 이뤄진 노 대통령과 박관용 국회의장, 정당 대표들 간의 환담에서부터 쉽게 확인됐다. 노 대통령과 박 의장, 민주당 박상천 대표, 통합신당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 자민련 김종필 총재,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 등이 참석, 오전9시40분께부터 10여분간 이뤄진 만남에선 재신임 문제를 두고 치열한 설전이 오갔다. 먼저 노 대통령이 "되는 방향으로 합의해 주길 바란다"고 협조를 당부하자 박 대표가 "현행법상 가능하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국가 안위에 관한 사항으로 보고 처리하면 되지 않느냐"며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재신임을 거론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박 대표는 "최도술에 대한 책임에서 국회 책임으로 변질된 것 아니냐"고 맞받았다.
박 의장도 노 대통령이 11일 기자회견서 국회의 김두관 행자부장관 해임안 가결 등을 비난했던 점을 들어, "국회가 발목을 잡는다고 했는데 용인하기 힘든 발언"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국회는 국민의 대표 기관인 만큼 국회의 결정은 국민의 결정"이라며 "이를 발목잡기라고 시비 거는 것은 입법부 권능 훼손"이라고 질타했다.
국회의 '홀대'는 본회의장에서도 계속됐다. 노 대통령은 오전10시5분께 김태식 부의장의 안내로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그러나 통합신당 의원들만 일어나 박수를 보냈을 뿐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거나 일어났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시정연설도 단 한 차례의 박수도 나오지 않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연설 말미에 송두율씨 문제가 언급되자 한나라당 의석을 중심으로 "저게 무슨 소리냐"며 술렁대기도 했다. 연설이 끝나자 통합신당 의원들은 다시 기립 박수를 보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중앙 통로에 위치한 몇 명만 일어나 퇴장하는 노 대통령과 어색한 악수를 나눴다.
한편 노 대통령이 이날 재신임 국민투표 날짜와 방법을 밝힌 것은 유인태 정무수석 등 참모진과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독자적인 결정이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전날 오후 열렸던 실무 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가 저녁에서야 직접 작성한 재신임 관련 일정 등을 연설문팀에 내려줬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정무수석실은 "내년 1월초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연설문을 보고 대통령 뜻을 처음 알았다"며 당혹스러워 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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