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서울 송파구청 4층의 전산교육장. 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 20여명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끙끙대고 있다. "여기요!" "선생님!" 곳곳에서 쇄도하는 도움요청에 강사들이 부지런히 달려가는데, 그들의 머리도 희끗희끗하다.이들 강사는 60,70대로 이뤄진 '할아버지 컴도사 6인방' 자원봉사단. 전직 중견기업 임원, 개인사업가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역시 2년 전만해도 컴맹이었다.
이들이 컴퓨터에 눈을 뜬 것은 송파구청에서 마련한 구민정보화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 조사선(68)씨는 "인터넷은 젊은애들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일단 배우기 시작하니까 재미가 쏠쏠하더라"고 했다.
뒤늦은 공부가 쉽지 만은 않았다. "배우고 돌아서면 금방 까먹고 하니 오죽 답답했겠느냐"라고 말문을 연 이진관(66)씨는 "집에서 복습이라도 하려면 아이들이 '할아버지가 무슨 컴퓨터냐'며 펄쩍 뛰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위에서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속에서도 하루 3∼4시간씩 컴퓨터와 씨름을 계속했고 결국 지금은 남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들은 지난해 봄 뭔가 뜻 깊은 일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새로 열린 컴퓨터 세상의 즐거움을 다른 노인들에게도 알려주자는데 일치했고, 구청 역시 노년층 컴퓨터 교육 활성화를 위해 이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컴도사 6인방은 지난해 5월부터 송파구내 129개 경로당에 '정보화 전도사'로 투입됐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구에서 지급한 컴퓨터는 경로당 구석에 쳐박혀 먼지만 수북이 쌓여있었고 노인들의 반응 또한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이씨는 "컴퓨터는 웬 컴퓨터냐. 이리와 안마나 해달라, 재미있는 얘기나 해보라는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경로당의 80대 이상 노인분들 앞에서 60,70대 컴도사들도 어린애 취급 당하기 일쑤였던 것.
이대론 안되겠다며 머리를 맞대 찾아낸 방법은 그들과 친구되기. 조씨는 "수박도 나눠먹고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며 "컴퓨터의 컴자도 꺼내지 말라던 분들이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이거 어떻게 켜냐'고 묻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컴퓨터 사제로서, 인생의 친구로서 관계가 많이 깊어졌다. 조씨는 "맛있는 거 해놓았으니 얼른 와서 먹자거나 적적한데 와서 노래나 같이 듣자는 전화가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온다"며 "어른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달려간다"고 말했다.
요즘 컴도사들은 더욱 바빠졌다. 경로당 어른들의 수준도 한층 높아졌고 요구하는 것도 많아졌기 때문. 김정수(72)씨는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흘러간 노래를 듣거나 바둑, 장기 등 재밋거리를 찾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외국 나가있는 손자·손녀들과 소식을 주고 받고 싶다며 이메일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강의는 경로당 밖으로도 이어져 전화나 이메일로 궁금한 부분들을 풀어주고 있다.
이씨는 "가족들과 이메일을 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는 분들을 볼 때 무척 기뻤다"며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현대사회에서 외면받고 쓸쓸해하는 노인들에게 희망을 전해 드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뿌듯해했다.
컴도사 6인방에게서 컴퓨터를 배우는 김이순(68) 할머니는 "학원의 젊은 강사들은 너무 빨리만 가르치려 들다가 스스로 지치고 마는데 이 분들은 우리들이 정말 뭐가 필요한지 알아 편안하다"고 말했다.
송파구청 조승호 전산팀장은 "젊은 학생들이 경로당을 찾았을 때는 얼마 후 모두 포기하고 말았다"며 "노인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려는 컴도사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의 활약에 고무된 송파구는 올해 말 2기 컴도사들을 선발할 계획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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