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나 비디오테이프에는 없다. 오직 DVD에만 있는 기능, 바로 육성해설(코멘터리)이다.육성해설은 감독이나 배우들이 영화를 보며 촬영당시 소감이나 제작에 얽힌 비화, 촬영기법 등을 설명한 것으로, DVD만의 핵심 기능이다. 이 기능을 선택하고 DVD타이틀을 감상하면 영화 화면에는 대사 대신 관계자들의 해설이 흘러 나온다. 외국 영화의 경우 해설이 한글 자막으로 나온다.
육성해설에는 배우들이 털어놓는 요절복통할 촬영 뒷얘기,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전문가들의 심도 깊은 설명이 들어 있어 코멘터리를 놓치는 것은 DVD를 반만 즐기는 셈이다. 11월에 DVD타이틀로 나올 우리 영화 '싱글즈'의 육성해설 제작현장을 찾아 맛깔스런 이야기를 먼저 들어봤다.
수다, 레디고 '싱글즈'의 육성해설 녹음 작업일인 7일 오후 2시 서울 청담동 사운드퍼퓸 스튜디오. 약속시간에 맞춰 김주혁이 먼저 도착했고 20분쯤 지나 장진영, 권칠인 감독이 들어섰다. 엄정화가 한 시간쯤 지나 도착하는 바람에 녹음은 3시를 넘겨 시작됐다. 주역 가운데 이범수는 불참.
프로듀서의 짤막한 설명을 듣고 녹음실로 들어선 네 사람은 각자 마이크가 놓인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쓴 채 영화가 나오는 모니터를 주시했다. 썰렁한 인사를 나누더니 10분쯤 지나자 다시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 보따리들을 풀어 놓았다. 권감독은 진중한 표정만큼이나 말 수가 적다.
Scene #1 장진영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속옷바람으로 방 안을 휘젓고 다닌다. "장진영씨를 망가뜨려야 되는데 너무 예쁘게 나온 거 아니에요?" 김주혁이 슬슬 발동을 건다. 기다렸다는 듯 엄정화가 받는다. "저거 남자팬티 아냐?" 터지는 웃음. 그러고보니 사각팬티다. 장진영, "언니는∼. 외국영화보면 사각입은 여배우 많아. 섹시하던데. 저거 여자꺼야." 배우들은 극장서 개봉했던 영화를 다시봐도 새로운 느낌에 빠져든다.
Scene #2 엄정화, 식당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 코로 근사하게 연기를 뿜는 장면에서 갑자기 엄정화, 소리를 지른다. "저, 담배 못피워요" 모두 웃는다.
Scene #3 장진영에게 반한 김주혁, 장진영이 일하는 식당에 매일 찾아온다. 장진영 왈, "개인적으로 전 이런 남자가 좋아요. 끊임없이 찍어주는 남자." 갑자기 녹음실 밖에서 터지는 환호, "와∼".
Scene #4 1시간쯤 녹음을 한 뒤 잠깐 쉬었다가 다시 시작했다. 장진영과 김주혁의 열렬한 키스장면. "좋았나요?"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 엄정화, "느낄 준비가 돼 있으니 느껴지던데요." 능청스런 장진영, "사실 속으로는 별 생각 다하고 있어요." 솔직한 김주혁.
Scene #5 급기야 장진영과 김주혁의 정사장면 돌입. 김주혁의 근육이 불거진 상체가 나오자 말을 아끼던 권감독이 한마디 던진다. "어찌나 힘을 주던지." 모두 웃는다. "저거 조명의 힘이에요. 조명을 옆에서 때려서 (근육이 두드러져 보이도록) 각을 잡아줬지."
Scene #6 가슴이 아련한 결말. "10년 후 이 영화를 보면 어떨까요? 이런 식의 느낌이 또 들까요?" 김주혁은 왠지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다. 그 아쉬움을 이런 식으로 푼다. "이 영화의 결론은 둘(엄정화, 장진영)이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이 되는거죠?"
육성해설 녹음이 끝나고 별도 부록으로 수록할 배우 및 감독 인터뷰까지 끝내고 나자 어느덧 밖은 어둠이 깔렸다. 4시간이 넘는 작업이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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