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느닷없이 꺼낸 비장의 '재신임 카드'가 정치적으로는 노 대통령에게 또 한 번의 '승리'를 안겨줄 지 모른다. 주말부터 이어진 각종 여론조사 결과 대부분 50% 이상이 노 대통령의 재신임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에 맞춰 청와대의 발걸음에도 힘이 들어가는 모습이다.그러나 노 대통령의 앞에 놓인 정치적 승패 여부와, 이번 '카드'가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선택이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당장 13일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국제신용평가기관 및 해외투자자의 반응은 이 같은 점을 분명히 환기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사는 이번 조치가 당장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에는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한국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해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바클레이캐피털 역시 "(노무현 정부를 둘러싼) 현 상황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허물 만한 매우 불행한 사태"라고 논평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예 노 대통령의 선택을 '도박(gamble)'으로 평가절하했다. 겉으로 두드러진 격렬한 반응은 없지만 외환위기를 겪어가며 소중하게 쌓아온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에 심각한 균열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취임 직후 노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일성으로 국제 외교가의 주목을 받았다. 또 1차 이라크 파병결정 당시에도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배경설명으로 '명분 없는 전쟁파병에 대한 고뇌'를 숨기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이런 행동이 지지자들의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을 지 모르지만, 국가적으론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새삼 언급하고 싶지 않다. 대통령의 선택은 '정치적 승부수' 보다는 한 단계 높고 넓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장인철 경제부 차장대우ic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