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3일 시정연설에서 밝힌 '강력한 토지 공개념 도입' 방침에 대해 부동산 업계와 전문가, 재계 등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최후의 배수진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토지 공개념은 시장 원리가 통하지 않는 부동산 시장을 반(反)시장적 규제로 다스리려는 발상이지만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열풍을 잠재우는 데는 직효가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정부가 조만간 융자 축소와 재산세 인상 등을 골자로 한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한다는 소식에 이미 거래가 '올스톱'된 부동산 시장에 사상 유례없는 불경기가 닥칠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급진적인 제도의 도입이 자칫 경제불황을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LG경제연구원의 김성식 연구원은 "노 대통령이 천명한 토지 공개념은 엄밀히 주택 공개념"이라며 "주택 공개념은 현재 집값에서 투기수요가 올려놓은 부분을 송두리째 걷어내겠다는 것으로 '도입할 수 있다'는 언급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토지 공개념을 당장 실시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이 제도마저 꺼낼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임에 따라 부동산시장의 과열양상이 상당폭 움츠러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또 "현재 거시경제지표 대부분이 위태로운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면 손 쓸 수 없는 깊은 불황으로 빠질 수도 있다"면서 "부동산 가격의 연착륙을 이끄는 보완책들도 고려해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고성수 교수는 "부동산 투기심리가 너무 심해지자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처방이 줄을 잇고 있다"며 "토지 공개념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제 자리를 찾으면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시장이 자율적인 조정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의 혼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거래허가제, 분양가 규제, 가구수 및 면적 제한 등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시장은 장기간 동면하게 된다"며 "정부가 언제까지 시장의 기능을 대신해서 일일이 수급조절을 챙기겠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재계는 "토지 공개념이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데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입장을 밝히기 힘든 사안"이라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사유재산권에 대한 침해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경기침체로 고전하는 기업에 추가적인 부담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지금도 분양경기가 안 좋아서 건설업계가 고전하고 있는데 공개념으로 인해 건설경기가 완전히 얼어붙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 89년 입법주도 이규황 전경련 전무
"토지공개념은 우리가 땅에 뿌리 내리고 생존하는 한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며, 당시의 시대상황과 여건에 따라 그 접근방식이나 채택하는 정책수단에 변화가 있을 뿐입니다."
1989년 건설부(현 건설교통부) 토지국장으로 토지공개념 관련 입법을 주도했던 이규황(사진) 전경련전무는 아직도 토지공개념에 대한 신념에는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토지는 단순한 '상품'이 아닙니다. 토지는 소유권 차원을 넘어 우리 모두와 후손을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돼야 합니다."
이 전무는 13일 노무현 대통령의 토지공개념 도입 검토 발언과 관련해서도, "토지공개념 정신은 부동산 버블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다만 과거에 문제가 됐던 것은 토지인 반면 지금은 주택이 문제된다는 점을 감안, 구체적인 제도에서는 기술적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무는 토지초과이득세와 택지소유상한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에 대해서도 "헌재가 문제를 삼은 것은 법리적·기술적 문제였지, 정책적 차원에서는 합헌 판정을 받았다"며 "전문가들 사이에 오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토초세의 경우 미실현이득에 대한 과세 자체가 위헌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세액결정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기준시가를 시행령에서 결정하도록 한 것이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다"며 "택지소유상한제 역시, 소유제한 기준으로 삼았던 '200평'이라는 근거가 미약하다는 이유 때문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전무는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을 새로 도입해야 할 지는 검토를 해봐야겠다"면서도 "기존 토지공개념 관련 3개 법안의 틀 안에서, 기술적인 문제와 주택 관련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무의 이 같은 개인 소신과 달리 그가 속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사유재산권 침해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전무는 90년 건설부 국토계획국장을 역임한 뒤,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을 거쳐 현재 전경련 전략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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