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겨울의 외환 위기 이래 한국의 거리에서 노숙자들을 보는 것은 별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노숙자들은 덜 부유한 사회에 고유한 현상이 아니다. 세계 제일의 부자 나라라는 미국에도 노숙자는 흔하고, 미국에 견주어 사회보장의 그물이 촘촘하다고 알려진 서유럽에도 노숙자는 있다. 루아시의 샤를드골 공항에서 고속전철을 타고 파리 북역에 내린 외국인 관광객은 유럽의 꿈을 상징하던 나라에서 자신들을 처음 맞는 사람들이 허름한 옷의 술 취한 노숙자들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묘한 기분이 들 것이다.파리를 비롯한 프랑스의 주요 도시에서 노숙자가 크게 는 것은 1970년대 말 이후다. 프랑스는 해방 이후 지속됐던 이른바 '번영의 30년(Trente Glorieuses)'에서 벗어나고 있었고, 빈부의 차가 커지며 광과 냉장고는 꽉 차 있는데 뱃속은 텅 비는 '자본주의적 추레함'이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1985년 10월14일 콜뤼슈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41세의 배우 미셸 콜뤼시가 '사랑의 식당'(Restos du coeur)을 출범시켰다. 콜뤼슈의 아이디어는 대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서 은퇴자들이나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노숙자들을 비롯한 빈민층에 무료급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즉각 큰 호응을 얻어내 첫 해 겨울에 850만 끼니를 제공했고, 20세기가 끝날 때는 급식이 2천5백만 끼니 이상으로 늘었다.
사랑의 식당은 제대로 된 복지국가라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어서 프랑스라는 나라의 자랑이랄 수만은 없지만, 적어도 시민 사회의 연대를 표상하고는 있다. 콜뤼슈는 사랑의 식당이 출범한 이듬해 여름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에게 헌정된 장자크 골드만의 노래 한 대목. "오늘날 사람들에겐 권리가 없다네/ 굶어 죽을 권리도, 얼어 죽을 권리도."
고종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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