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청와대 비서진 전원이 11일 오전 사의를 표명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황급히 기자회견을 자청, 이를 모두 반려했다. 이런 상황은 본인들은 물론 보는 이에 따라 '충성심과 책임감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선언해놓은 마당에 벌어진 집단 사표소동은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일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본인의 말에 따라 노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은 국민의 재신임 여부에 맡겨졌다. 그런 대통령에게 '사표를 수리하고 다시 임명권을 행사하라'는 식의 요청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내각이나 청와대 비서진이나 어차피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결과에 따라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하게 돼 있다. 그런데도 반려될 것을 뻔히 예견하면서도 우르르 몰려 사표를 낸 것에 대해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무책임의 극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은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마당에 각료들마저 사퇴한다면 국정은 누가 맡느냐는 말이다. 유인태 정무수석 등 일부 인사가 "쇼로 비칠 수 있다"며 반대했던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라고 보인다.
노 대통령은 사표를 반려하면서 "그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최후의 카드'를 뽑아들고 나서기까지 내각과 청와대 참모의 잘못이 없었을까. 당장 문제가 된 노 대통령의 측근 최도술씨 비리에 대해서도 인사검증이나 내부감찰 등의 실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잘못에 대해서도 사표를 내려면 진즉 냈어야 할 일이다. 아무 말 않고 있다가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하니 '석고대죄'(席藁待罪)한다고 나선 것은 너무도 전근대적이었다.
고태성 정치부 차장대우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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