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시론]재신임 물어도 문제는 남는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시론]재신임 물어도 문제는 남는다

입력
2003.10.13 00:00
0 0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표 직후의 큰 충격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그러한 폭탄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노 대통령의 개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정치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대통령제에 내재하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이원적 정통성과 관련되어 있다. 국민들로부터 직접 선출되는 국회와 대통령이라는 두 기구간 갈등이 생겨나는 경우에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대통령제의 원활한 작동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된다.

미국에서라면 대통령이 의회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설득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런 행동은 야당파괴 공작이거나 의원 빼오기로 비난 받을 것이고 대통령 편에 서서 표결에 참가한 야당 의원은 아마도 '사쿠라'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의 정당이 국회 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경우에 우리나라 대통령은 미국과 달리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마다 이러한 여소야대의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어 왔다. 그 한 가지는 연립과 같은 형태로 의회 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의 3당 합당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것은 안정적으로 제도적 지지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 입장에서는 아마 가장 바람직한 방식일 것이다.

여소야대로 인한 통치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은, 비민주적 관행이지만, 권력기관을 동원하는 일이다. 과거 안기부, 국세청, 검찰 등을 통해 정치인들의 가장 큰 취약점인 정치자금 등을 건드리며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 동원되기도 했다. 세 번째로는 인기몰이 정책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고 그러한 개인적 인기를 기반으로 의회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과거사 청산 등의 정책이 이러한 방식의 예가 될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는 과거 대통령들과는 달리 이 세 가지 방식을 동원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3당 합당과 같은 연립의 형태로 국회 내 과반수 의석을 얻기는커녕 여당마저 쪼개져 버렸고, 검찰 등 권력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하기로 했고,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듯이 지지율은 20∼30%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노 대통령은 재신임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낸 것 같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는 재신임을 받게 되면 과연 그 이후에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국민투표를 실시해서 설사 압도적인 지지로 재신임을 받게 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대통령에게 의회를 압도하는 국정운영의 전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재신임 여부와 무관하게 대통령제라는 헌정체계의 작동 원리상 대통령을 견제하는 국회의 권한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신임을 통해 대통령의 국정 주도력이 다소 회복되기는 하겠지만 국회에서 대통령의 정당이 안정적인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상 여소야대로 인한 갈등은 앞으로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재신임을 묻는다는 것 자체로 재신임까지 불러온 우리 정치제도상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여부를 묻는 일은 기정사실화했다. 어차피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면 이를 우리 헌정체계의 문제점을 교정하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노 대통령 개인에 대한 재신임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는 사실상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값비싼 비용만을 지출하게 되는 것이다.

강 원 택 숭실대 교수·정치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