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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애국심 좀 나눠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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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애국심 좀 나눠 갖자

입력
2003.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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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먹고 알까지 먹는다는 건 대단히 매력적인 일이지만 그만큼 위험도 크다. 죽도 밥도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논란들을 보면 그런 경우가 많다. 따로 분리하여 다뤘더라면 더 좋았을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려는 욕심을 부리느라 오히려 어느 한가지 일도 제대로 못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로 부안 사태를 들지 않을 수 없다.정부는 그간 환경단체들이 요구해온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 재검토 요구에 정면으로 성실하고 진지하게 대응했어야 했다. 만약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옳거나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것이라면, 그걸 납득시키는 일을 선행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즉, 핵 폐기장 입지 선정 이전에 핵 폐기장의 필요성에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먼저 끌어냈어야 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부안 사태는 에너지 정책 문제와 핵 폐기장 입지 선정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풀기가 매우 어렵게 돼 있다.

부안 사태를 다룬 텔레비전 토론이 여러 차례 열렸지만, 이 토론 프로그램들에서조차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다루는 바람에 그 첫 번째 문제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기는 어려웠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애국(愛國)을 위한 것이지 매국(賣國)을 위한 건 아닐 것이다. 애국을 독점하겠다는 게 아니라면, 그런 애국적 행위에 대해 국민 절대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환경단체들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 해도 그것이 비현실적인 것이라면 국민은 정부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애국 독점욕은 독선과 오만으로 빠져 국민 설득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그래 놓고선 이제 와서 부안군민들만을 상대로 한 설득, 그것도 매우 강압적인 설득에 매달리고 있다.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정부의 독선과 오만으로 인해 부안은 어느덧 반핵운동의 성지가 되고 말았는데 거기에 대고 '과학'과 '안전'을 역설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옳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 받았다고 하자. 이후 핵 폐기장의 '과학'과 '안전'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역설하고 수긍을 얻어냈어야 했을 일이다. 주로 농어업 및 관광 분야를 생업으로 갖고 있는 부안군민들에게 중요한 건 '과학'이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의 인식과 정서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앞으로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과학'과 '안전'을 납득시켜야 할 책무가 부안군민에게 있단 말인가.

탁 깨놓고 이야기해보자. 부안 핵 폐기장 선정은 부안군민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정부는 제대로 된 민주적 절차를 거친다면 핵 폐기장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고, 그래서 힘으로 밀어 붙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닌가? 정부의 어려움을 십분 이해하지만, 문제는 그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그 발상의 이면엔 대화와 설득의 가치를 폄하하고 시골 사람들을 깔보는 권위주의적 자세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이 일은 애초부터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식의 발상과 자세로 접근할 일이 아니었다. 정부가 애국심을 독점하려 든 게 문제였다. 그래서 부안군민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는 독선과 오만이 나온 것이다. 애국심의 분담을 위해서도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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