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7일 중국 옌지(延吉)에서 '해방전 조선민족 대중가요 연구'라는 제목으로 열린 국제학술회의는 남북교류 사상 최초의 예술 분야 학술교류였다. '한국대중가요사'를 연구한 필자는 북한 원로 대중가요 연구자인 최창호(69) 평양출판사 고문을 만난 것부터가 감개무량했다. 그의 저서 '민족수난기의 신민요와 대중가요들을 더듬어'는 남한에서도 나와 있다.학술토론회라는 틀로 남북교류를 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노릇이 아니었다. 학술토론회란 치열한 논리로 서로를 자극하고 싸우면서 이해와 인식의 폭을 넓히는 과정인 반면, 아직 우리의 남북교류는, 사석에서 나눈 박형섭 단장의 말대로, 서로를 자극하지 않는 화해와 만남이 훨씬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의 대립지점과 그 시시비비를 구체적으로 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보다는 좀더 핵심적인 지점인, 남북의 학문적 풍토와, 일제시대 대중가요 계승의 사회적 맥락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남한이 사실 자체의 분석과 규명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에 비해, 북한은 관점과 평가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일제시대 양대 양식인 트로트와 신민요 중, 남한에서는 자본주의 시장 안에서 신민요가 빨리 쇠퇴하고 트로트가 살아남은 것에 비해, 북한은 오랫동안 트로트를 누르고 신민요를 착실하게 계승·발전시키다가 근년에 트로트를 부활시키기 시작했다.
따라서 남한에서는 진지한 학문적 분석 대상에서 배제된 채 '민족의 노래'니 '전통가요'니 하는 통속적 해석을 방치해왔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긍정·부정의 양측면의 냉정한 규명을 중시하는 것에 비해, 북한으로서는 80년대까지 비탄·퇴폐로 평가했던 트로트에 대해 그 긍정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부각하여 부활의 명분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다고 보인다. 특히 일제시대 대중가요의 부정적 영향력이 거의 사라진 지금, 이 문화유산을 긍정적 측면에서 해석·계승하자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 없는 주장은 아니었고, 이를 위해 부정적인 면을 시시콜콜 들춰내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남한 연구자로서는 사실의 분석에서 나온 결론을 도외시하면서까지 이러한 태도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남과 북은 서로 자극하지 않으려 매우 조심하면서도 적잖이 서로를 자극한 셈이었는데, 그럼에도 남북 모두 잘 참으며 교류 분위기를 유지하였다.
여기에서 재중동포 학자들의 위상은 매우 중요했다. 큰 틀로는 북한을 따라가고 있으면서도 미시적인 분석에서는 남한의 학문성과를 흡수하는 경향을 보여주었고, 객석의 노학자들은 북한의 관점·태도에 동의하면서도 필자의 분석 역시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밖에도 일제시대 생생한 대중가요 체험을 지닌 최창호 고문 등 북측인사들과 사석에서 나눈 이야기를 통해 남한에는 없는 자료와 역사적 경험을 북한이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교류는 참으로 소중했다.
/이영미·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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