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의 '장래 희망'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장래 희망 란에 나는 언제나 '작가'라는 말을 써 넣었다. 글을 쓰는 일이 마치 나의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 있게 작가가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 나는 글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싶었고,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으로 택한 것은 작가가 되고 싶은 소망에 한 발 더 다가서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썼던 장래 희망 란에는 작가라는 말 대신 '편집자'라는 말이 들어갔다. 그때 적힌 그 말이 나의 진로를 결정했던 것일까,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나는 편집자로 살고 있다.글을 쓰는 것 만큼이나 책 읽는 것을 좋아했기에 아직 즐겁게 일하고 있지만, 마음 한켠 아주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가끔 울적해진다. 이런 울적함을 덜어내고 싶어지면 술을 마시기도 하고, 더러는 예술가의 삶이 통째로 담겨 있는 책을 읽기도 한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특히나 예술 분야에서 적어도 자신이 택한 어느 한 분야에 푹 파묻혀 있는 이들의 이야기라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남는 결과물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기 위해 겪었을 깊은 고통의 과정에 나는 무게를 더 두고 싶다.
'소설가의 각오'는 오로지 글쓰기에만 전념해온 '24시간 내내 소설가'인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집이다. '30년 넘게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해오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소설문법을 제시해온 겐지 문학의 이력서'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의 각오'는 문학을 가슴에 품고 사는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내게, 살아있는 채찍이나 다름없었다. 세상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은 채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정신의 죽비(竹)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지극히 범인(凡人)으로 살고 있는 나의 속내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느낌이었다. 내가 꿈꾸는 작가로서의 완벽한 삶, 그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 움직이기보다 단 하나, 자신이 쓰고 싶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온전한 작가가 되기 위하여 그는 철저하게 고독했을 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 절제와 금욕을 실천했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으며 남은 생을 그렇게 보낼 것이다. "고독감 같은 것을 강인하게 극복하고, 주저와 나약함의 파도도 차례차례 극복하고, 그 너머에 있는 무엇을 나의 펜으로 찔러보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가 새삼 쟁쟁하게 다가온다.
/박선영·오늘의책 편집부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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