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 지음 아웃사이더 발행 9,800원
진실은 고귀하지만 때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인이자 격월간 사회평론지 '아웃사이더'의 편집위원인 노혜경(45·사진)씨의 첫 산문집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는 그런 점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노씨는 한국 사회를 향해 신랄한 독설을 퍼붓는다. 그의 독설은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가부장적 질서, 성폭력으로 여성을 길들이려 하는 남근 파시즘, '아버지'들의 그늘과 권위 속에서 안주하는 한국 문단을 향해 있다.
여성들은 가부장 질서에 여전히 길들여지고 있고, 특정 지역 출신들은 지역감정이라는 굴레 아래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영성(靈性)을 꽃피워야 할 문단은 권력의 놀음판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노씨는 전투적으로 한국 사회의 위선과 폭압을 들춰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진실히 밝혀지는 순간 우리는 부끄러움으로 불편해진다.
"담론과 논쟁의 한가운데서 나는 명확하게 누군가를 편들고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이 달라지길 바라며 현장에서 글을 쓴다"고 노씨는 말했다. 당당하게 편파적이다. 그는 여성, 노동자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편에서 억압과 질서를 강요하는 사회를 향해 목청 높이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책에서 단순히 한국 사회의 지옥도를 그려내거나 일방적인 편들기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사관 앞에서 환경 오염과 관련해 1인 시위를 벌이는 수녀를 보며 그는 "왕들과 지배자들의 음모와 영광의 기록을 뒤집어서 바라보는 역사는, 나쁜 현실에 종지부를 찍는 변화와 진보의 물꼬는, 바로 저 '한 사람'들의 모임에 의해 터뜨려져 왔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의 기준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본 노씨의 글은 분명 거칠고 투박하다. 사회학적 지식을 담보하거나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글이 남루하지만은 않은 것은 그가 세상을 향한 긍정과 희망의 창을 언제나 열어놓기 때문일 것이다. "차별이 부끄러운 것이란 걸 한번 깨달으면, 비록 관습 때문에 일거에 변화할 수는 없어도 점차 변화하게 된다. 한 개인이 사회적 발언과 행동을 통해 주체로서 거듭나는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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