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가을의 전령은 백조다. 새벽 공원 산책 중 문득 기막히게 고요한 호수 북쪽에 떠있는 한 마리 백조를 목격하는 날 사람들은 안다. 가을이 도시의 심장에 들어왔음을. 또 하나 가을의 전령이 있으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다. 라인의 오른팔인 마인강변 항구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도서전이 열리면 사람들은 안다. 가을이 깊어져 유정한 중추에 이르렀음을.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7일 개막해 13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 세계 최대 책의 축전은 뉴욕 9·11 테러 이후 두 해 동안 참가 출판사와 방문자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아찔한 추락을 경험했지만 올들어 다시 행복한 건재를 과시하면서 책 신전의 문을 당당히 열어젖혔다.
도서전 개막 전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소동이 있었다. 이곳 출판계에 출렁이는 탁류, 소위 '고백산업'의 홍수이다. 자서전, 회고록, 비망록 등을 쏟아내는 이 고백산업은 요즘 대중스타들의 추문과 염문을 토해내는 장으로 남용되고 있다. 독일식 표현으로는 소위 '더러운 속옷 빨기' 경쟁인 것이다.
도서전 개막 이틀 전 디터 보렌이란 대중가수는 그의 고백록 '무대 뒤에서'를 출간했다. 출간 동시 네 명의 대중스타가 결정적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이 책의 판매중지를 요구하는 법적 신청서를 냈다. 이에 즉시 초판 20만부를 수거, 네 명이 지적한 부분을 부랴부랴 삭제해서 재출간하는 곡예가 연출됐다. 그는 지난해에도 '진실뿐'이란 고백록으로 자신의 전처와 옛 동거녀의 비명에 찬 항의를 받았었다. 그후 그녀들도 각각 그의 추문을 폭로하는 고백록을 출간했다. 놀라운 것은 이 야만적 소동이 톡톡히 광고 효과를 일으켜 이 책의 폭발적 판매기록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조심성 없는 가수는 올해도 도서전의 진지한 노장들, 가령 탁월한 시집 '마지막 무도'를 낸 귄터 그라스, 신작 소설 '그해의 어느 하루'를 출간한 크리스타 볼프 등을 제치고 최고 스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 변태적 현상을 보는 이곳 시각은 두 가지이다. 우선 이 따분한 소동들이 독자들을 진지한 책읽기로 이끄는 '인터메초' 즉 교태에 찬 막간극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과, 40% 이상의 판매고 손실 속에 아연해 있는 독일 출판계를 구조해 낼 응급용 구명보트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추문조차 팔고 산다. 식욕 좋은 호기심에 먹이를 던져주기 위해 서점들 서가엔 추문을 적은 책들이 우아하게 꽂혀 있고 독자들은 오늘도 돈을 지불하고 덧없이 그 추문들을 구입한다. 그래서 이 거래를 '고백산업'이라고 부르는 독일식 표현은 옳다.
강 유 일 소설가 독일 라이프치히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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