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은 청와대에서도 충격 그 자체였다. 노 대통령이 10일 오전 돌연 기자회견을 자청, 문희상 비서실장만을 대동한 채 춘추관에 왔을 때만 해도 대부분 '사과'수준의 발언을 예상했다. 사회를 보던 윤태영 대변인도 재신임 발언이 나오자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졌다.회견 직전 노 대통령의 뜻을 알았으나 만류하지 못한 문 실장은 침통한 표정이었고 문재인 민정수석은 뒤늦게 급히 회견장을 찾아왔다. 회견에 참석도 못한 유인태 정무수석은 "사전에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수석은 이날 "최도술 전 비서관 문제가 언론에 터진 직후 재신임 국민투표가 가능한지 법률 검토를 했다"고 말해 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이미 참모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과 사전 상의를 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노 대통령은 회견 후 고건 총리, 문 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총리에게 상의 못해 죄송하다. 부담이 커져 힘드시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오후에 재일동포 상공인들을 만나 "한국이 좀 시끄럽고 저도 요즘 힘이 좀 듭니다"라며 "그러나 다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전날 인도네시아에서 귀국하자마자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 "책임을 지겠다. 도마뱀 꼬리 자르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지는 않겠다"며 "조만간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한 참석자는 "그러나 그 말을 재신임으로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비극"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회견 직후 청와대는 충격에 휩싸인 채 내부 대책회의를 하느라 어수선했다. 대부분 참모들은 "할 말이 없다"고 입을 닫았으며 "너무 큰 것을 터뜨렸다", "승부수를 띄웠다"는 등의 반응이 혼재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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