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재신임이 정국의 화두로 등장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10일 발언이 처음은 아니다. 1987년 대선공약으로 중간평가를 내세운 노태우 전 대통령과, 75년 유신헌법 및 대통령 신임을 연계한 국민투표를 제안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가 형식논리상 전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는 결국 실현되지 않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는 정권을 연장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점에서 임기 8개월 만에 나온 노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과는 궤를 달리 한다.13대 대선에서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재임기간에 중간평가를 받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당선됐다. 다음해 총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민정당이 원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다. 그러자 제1야당인 평민당의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임투표와 연계한 중간평가'라는 사실상의 국민투표를 노 전 대통령에 요구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89년 3월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물밑타협을 통해 중간평가 유보를 이끌어낸데 이어 3당 합당으로 여소야대를 극복, 중간평가도 물 건너가게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75년 유신헌법과 자신에 대한 신임을 함께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는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자, 1월22일 특별담화를 통해 "만일 국민 여러분이 유신체제의 역사적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고 현행 헌법의 철폐를 원한다면, 나는 그것을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일당은 국민투표를 위헌으로 규정, 법원에 '국민투표정지가처분'을 신청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각하했다. 다음달 12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박 전 대통령은 98.3%의 높은 지지를 받아 반정부 운동을 제압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앞서 69년에도 직접적으로 대통령직을 내걸진 않았지만 신임을 묻는 '3선 개헌'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도 했다.
노태우·박정희 전 대통령 외에는 대통령직을 내건 중간평가나 재신임을 들고 나온 대통령은 없었다. 다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99년 7월 당시 여권의 내각제개헌 유보 방침과 관련, 대선공약 불이행을 이유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한 적이 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 참패한 뒤 "8·8 재보선 이후 후보 재경선을 받겠다"며 '대선후보 재신임'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단일화 논의로 이 제안은 흐지부지됐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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