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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평범한 것이 좋다

입력
200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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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것이 좋다. 평범이라는 말은 뛰어난 점이 없이 보통이라는 뜻이지만, 평범의 의미와 그 미덕을 모르거나 평범할 수 없어서 고통과 수난을 겪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노무현 정부의 각료들 중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하기야 평범하다면 일국의 장관직을 맡을 수도 없을 것이다. 각 부문을 개혁해 새 판을 짜려 하는 정부에는 특히 비상한 성격과 결단력 추진력을 갖춘 인물들이 필요할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개혁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잘 알 수 없게 돼버린 채 비상한 성격과 평범하지 않은 언동만 자꾸 부각돼 실망을 키워주고 있다. 잇따른 자해(自害)에 가까운 언동으로 취임 14일 만에 낙마한 최낙정 전 해양수산부장관은 '공무원이 설쳐야 나라가 산다', '공무원은 좀 튀면 안 되나요'라는 책을 냈던 사람이다. 그는 저서를 통해 공무원사회의 경직성과 병폐를 지적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일할 것을 강조했으나 결국 그런 식으로 튀면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말았다.

역시 평범하지 않게 물러난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은 최 전 장관에 대해 "내가 봐도 좀 튀는 스타일이었다. 차관일 때는 좀 튀어도 되지만 장관은 다르다"고 말했다. 차관은 튀어도 되고 장관이 되면 갑자기 안 된다는 말은 우습다. 차관일 때 튄 사람은 장관이 되어서도 튈 수밖에 없다. 최 전 장관은 평소 "모난 돌이 되어 정을 맞더라도 소신껏 일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을 맞지 않게 모가 나지 않으려 하는 노력이 아니라 그 소신이 건전한 상식에 바탕을 두었으며 보편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모난 돌은 모난 돌대로 쓰임새가 있다. 개인의 창의와 비상하고 독창적인 언행이 의미가 있는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이 혼동돼서는 안된다.

취임 초기에 정장차림을 거부하고 손수운전을 해 눈길을 끌었던 이창동 문화부장관도 평범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8일 기자들과 만나 송두율씨 문제가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으며, 언론이 연일 톱으로 다루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송씨 문제에 대해서는 강금실 법무부장관도 처벌 불가의견을 밝힌 데 이어, 그의 입국이 결국 우리 체제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두둔하는 듯한 말을 했다. 내용과 질은 서로 다르지만 두 장관의 발언은 송씨문제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나 감정과 동떨어진다.

평범하기란 쉬운 것 같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평범은 중용과 통하며 사려와 분별의 바탕이 된다. 일정한 사안에 대해 적절하게 판단하고 발언하고 대처하는 형평감각, 보편타당성과 통한다. 일본기사 다카가와 슈가쿠(高川秀格) 구단은 혼인보(本因坊) 기전을 9연패한 덕분에 유일한 명예혼인보가 됐다. 그의 인기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호방하거나 감각이 예리한 바둑과 거리가 멀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 부딪칠 때마다 쉽고 평범하게 이길 수 있는 수를 두었다. 즐겨 쓰던 휘호는 流水不爭先(유수부쟁선),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바둑이나 세상일이나 행정이나 물 흐르듯 평범하고 자연스럽다면 제일 좋다. 예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도 무심과 평범, 고졸(古拙)의 경지다.

수년 전 고려대 김병국 교수가 낸 칼럼집의 제목은 '열심히 잘못 사는 사람들'이었다. 고위 공직자들의 언동을 보면 열심히 잘못 산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더라도 열심히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취임 초부터 비난을 자초한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국회에서 "공인의 자리가 아직 몸에 맞지 않는다"고 고백을 겸한 사과를 했었다. 지금 각료들의 열의와 순수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공인의 자리가 몸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게 문제이며, 코드가 맞는 사람들 위주로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사람들을 즐겨 기용하는 것이 문제다.

임 철 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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